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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Mar 30. 2020

지니네로 가는 길

방콕

다음 날 아침.

 

※호주여행기 프롤로그에서 발췌 (이 여행이 끝나고 호주로 나를 떠나게 만든 결정적 이야기)


내 인생 마지막의 여행이 되겠지 하고 최대한 즐기자. 최대한 많이 보고 느끼자 하는 마음으로 태국으로 갔다. 나는 여행을 가면 아침 일찍 일어난다. 원래 아침형 인간이기도 하지만 특히 여행가면 그 날은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설레임에 일찍 눈이 떠진다. 


그날도 아침 6시쯤 눈이 떠져 맥주 한병을 사들고 방콕의 람부뜨리 거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구경하며 태국의 아침을 만끽했다. 그렇게 한 30분 지났을까. 옆을 보니 금발머리에 파란눈 거기에 빨간 원피스를 입은 서양 여신이 나와 똑같이 길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런 미인에게 말을 걸지 않는 건 실례다 싶어 다가갔다.


“혹시 라이터 있어?”


물론 나도 흡연자라 라이터는 당연히 있다. 말을 걸기 위한 구실일 뿐이다. 그 여자는 씨익 웃으며 라이터를 건내준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옆에 앉아도 돼?”


흔쾌히 허락한다. 그렇게 옆에 앉아 이것저것 말을 하게 되었다. 아일랜드에서 온 에마. 친구를 기다리고 있단다. 어제가 아일랜드 최대의 축제 세인트 페트릭 데이라 열심히 놀고 지금 친구가 숙소 열쇠를 가지고 있어서 이렇게 앉아서 기다리고 있단다. 


한시간쯤 이야기했더니 친구가 온다. 큰일이다. 남자친구란다. 서양인 특유의 꼬불꼬불한 곱슬머리인지 파마머리인지가 인상적인 시원한 인상의 저르. 걱정했던것과는 달리 셋이서 맥주한잔 하러 가잖다. 아침 8시다. 


말이 잘통해 술을 계속 시켜 먹었다. 저르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내 맥주를 주문해준다. 에마가 나에게 묻는다.


“그래서 넬리 너는 태국 갔다가 다음 여행지는 어디야?”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한국에 회사에 계약서 써놓고 2주후면 가서 일해야해. 이 여행이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 나는 아직 더 여행하고 싶은데 이제 나이도 있고 부모님도 정착하라고 하시고 에휴..”


에마와 저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되묻는다.


“넬리야 우리는 너보다 3살 많아. 그런데 우리는 아직 3년 정도 여행 더 하다 아일랜드로 돌아갈꺼야. 나이가 뭐가 문제야? 부모님이 니 인생 살아줄꺼야? 너 아직 하고 싶은 거 다해도 할 수 있는 일 많아. 뭐가 문제야?”


그 순간 수백개의 느낌표가 내 뒷통수를 때린다. 그래. 아직 나는 젊은 것도 아니고 어리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에마와 저르와 연락하고 지낸다. 이 커플은 이제 결혼해서 아직까지 여행하고 있다. 


아침부터 술을 정신없이 마시다 보니 점점 체크아웃 시간이 가까워온다. 


‘아 맞다! 오늘 체크아웃하고 지니네 게스트하우스 찾아보기로 했지!’


에마와 저르에게 자고 있는 친구들 깨워서 올께하고 람부뜨리를 지나 큰 길로 나가서 걸어가는데 앞에 낯익은 여자 둘이 보인다. 혜수와 한을이다.


“엇 어디가?”


그랬더니


“일어나서 오빠방 가니까 아무도 없길래 일단 산책이나 하자하고 나왔는데 이렇게 만났네요”


하고 웃는다. 이미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술을 좀 마신 나는 이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에마와 저르에게로 갔다. 애들은 외국인이랑 술은 처음 마신다고 하며 부끄러워하면서 들뜬 것 같다.


옆에서 열심히 통역해주면서 손짓 발짓을 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 진짜 체크아웃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에마와 저르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나왔다.


“언젠가 길에서 만나자”


그렇게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중 길을 잃어 여긴 어디지 하며 헤매다 지니네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어제 잤던 숙소와는 걸어서 1분 거리. 바로 코앞에 있었다. 어제는 어둡기도 하고 지니네 게스트하우스는 다른 숙소처럼 큰 간판이 없다. 문 앞에 작은 푯말이 다였다. 그래서 얼른 어제의 숙소로 가서 짐을 싸서 체크아웃을 하고 지니네로 들어왔다.

지금까지 가본 게스트하우스 중 가장 작은 규모였지만 가장 편한 분위기인 이 곳. 그때까지는 몰랐다. 내가 지니네에 오기 위에 방콕에 오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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