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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May 07. 2020

그래도 뭐 좋다

방비엥

라오스에 와서 조금씩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내가 생각했던 내 마지막 여행은 이런게 아니었는데’ 그리고


‘현주에게 태국으로 오라고 한 사람은 나니깐 끝까지 책임져야겠지’


하는 생각과 충돌하던 중 상목이형한테 말했다.


“형. 저 혼자 남부로 갈께요. 맨날 이렇게 술 마시고 노는 것도 지겨워요. 그리고 형도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요즘엔 현주랑 말도 안해요. 왜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마음 안맞는 사람이랑 같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형은 진지하게 말한다.


“야 그래도 너가 오자고 했으면 끝까지 있어야지 혼자 가면 안되지. 현주한테 불만이 있으면 얘기 좀 하자고 하고 대화를 해야지 둘 다 이렇게 꿍해있으면 어떻해”


나는 싫은 소리를 못하는 성격이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보지 않는다. 그래도 말은 해야했다. 현주를 불러서 얘기 좀 하자고 했다. 


“요즘 우리가 불만이 쌓인 거 같은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해? 어느 순간 우리 말도 안하자나. 넌 상목이형이랑만 놀려고 하고 나는 최대한 뭔가 해보려고 하는데 넌 모든게 마음이 들지 않는 것 같애”


현주는 어이없다는 듯 말한다.


“너가 같이 와 놓고 우리는 신경도 안쓰고 딴 사람하고만 놀자나. 같이 놀러 술집 와놓고 넌 항상 어딘가 사라지고 없지. 우린 너 찾다가 그냥 포기하고 우리끼리 놀지. 어디 가자고 해도 넌 안가지. 이럴꺼면 애초에 왜 같이 오자고 한거야?”


현주 입장에선 서운할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내 입장에선 내가 다른 사람들이랑 놀기 전의 현주의 태도가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말해봤자 의견 차이만 생기고 괜히 속좁은 사람 되기 싫어서 알겠다 하고 나왔다. 이제 길어봤자 이틀 정돈데 그냥 참고 있기로 했다.


밤이 되고 또 놀러나가자고 한다. 나는 그냥 안가기로 했다. 술 먹기도 지친다. 나는 그냥 쉬기로 했다.


항상 아침에 일찍 눈을 뜨는 나는 혼자 산책 하는 것을 즐겼다. 강가에 앉아 가만히 있으면 별 생각이 다 든다. 그 중에 제일 큰 생각은 이거다.


‘나는 과연 여기서 뭘 하고 있나’



며칠 전 산책을 하고 숙소에 왔다 밥을 먹으러 가려는데 내 조리가 없다. 


내 조리는 방콕에서 산 고동색 바탕에 브라질 국기가 붙어있는 짝퉁 하바이나스다. 방 앞이 아닌 숙소로 올라가는 정문에 다 같이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시스템이라 그냥 벗고 들어갔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맨발로 나갈 순 없어 거기에 있는 꽃무늬가 그려진 아무 조리나 신고 와서 또 며칠 동안 잘 신고 다녔다. 


이제 방비엥을 떠나는 마지막 날. 내 꽃무늬 조리도 사라졌다. 이번엔 하늘색 조리를 그냥 신고 나왔다. 과연 내 조리는 지금 어디를 여행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최악의 라오스 여행이 드디어 끝나고 체크아웃을 하고 방콕으로 돌아가는 날. 숙소에는 다른 한국인들 몇 명이 방콕으로 간다고 하고 가방을 맡겨놓고 테이블에 앉아 얘기하고 있다.


“라오스 돈이 생각보다 많이 남았는데 우리 2만낍씩 (라오스돈 만낍에 한국돈 1400원) 여기 모아서 가위바위보해서 이긴 사람 몰아주기 하자”


옆에서 듣던 나는


“저도 라오스 돈이 좀 남았는데 혹시 저도 같이 해도 될까요?”


한국인 일행들은 웃으면서


“네 그렇게 하세요. 절대 이길 일 없을거에요”
 
 

그래서 나도 말했다.


“혹시 제가 이기면 이걸로 음료수를 산다던지 밥을 산다던지 하는 일 없을거에요. 우리는 모르는 사람이니까요”


오케이란다. 그래서 시작한 가위바위보!


나혼자 보자기 모든 사람들이 다 바위다. 그 사람들이 짰는지 한방이 끝났다. 난 씨익 웃으며


“돈 물리기 없다 그랬죠? 저는 마지막 쇼핑 좀 하고 올께요”


하고 떠났다. 나는 이렇게 뜬금없이 운이 좋을때가 있다. 그렇게 딴 돈으로 가방도 하나 사고 팔찌 두개 티셔츠 두장 목걸이 하나를 샀다. 어차피 다른나라가도 환전도 안되는 돈 쇼핑에 다 써버렸다. 쇼핑을 하고 돌아오니 무서운 눈으로 다들 나를 쳐다본다. 


‘뭐 어쩌겠어 내가 이긴걸 후후..’


드디어 다시 방콕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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