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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May 08. 2020

잘못된 만남, 이제 안녕

방비엥에서 방콕가기 

총 14시간 소요 예정인 방콕행. 적어도 버스티켓을 끊은 여행사에서는 그랬다. 그래서 여긴 동남아라는 것을 감안해서 두 세시간 정도 늦게 도착하겠지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오후 1시 반이다. 그래서 방콕 지니네에 있는 연희에게 아침 6시 정도에 만나기로 했다. 


방비엥에서 일반버스로 국경까지 가서 한번 내렸다가 태국국경 마을인 농카이에서 Sleeper 버스로 갈아탔다. 알고는 있었지만 버스는 너무 추웠다. 동남아의 야간버스는 너무 춥다. 일부러 그러는건가. 그래서 미리 준비해간 긴팔 져지셔츠를 입었다. 그리고 자리마다 작은 담요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내 자리엔 없었다. 앞자리를 보니까 서양인 여자 둘이 담요를 두 장씩 덮고 있었다. 내 담요를 가져갔나보다. 역시 싫은 소리를 못하는 나는 그냥 놔뒀다. 그래서 가는 내내 추웠다.



장기버스라 가는 동안 잠깐 휴식시간이 항상 있긴 한데 이번 버스는 너무 자주 정차했다. 한시간에 한번씩 쉬는 것 같았다. 야간버스에는 운전수가 두 명이서 교대하면서 운전해서 그냥 쉬어가나보다 했는데 한밤중에 두 세시간은 멈춰있었다. 


그리고 날이 밝고 또 멈춘다. 이번에 또 한시간 이상 멈춰 있길래 운전수가 있는 일층으로 내려가봤다. 운전석에는 아무도 없다. 춥기도 하고 기지개도 펴고 싶어서 밖으로 나가고 싶은데 문을 어떻게 여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운전석에 있는 창문을 통해 몸을 구겨넣어서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맑은 공기를 마시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잠에서 깬 서양 여행자들이 눈을 비비며 한둘씩 밖으로 나온다.



“이상하지 않아? 너무 오래 쉬는거 같애. 운전사들은 다 또 어디간거야?”


하나둘씩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한명이 맞은편에 있는 경찰서를 보고 


“얘네들 경찰서에 있는거 아니야? 한번 갔다올께”


그러고는 뛰어간다. 한참 있다 나오더니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한다.


“운전사들 대마초 피우다가 잡혀서 조사받고 있대. 지금 대마초 피고 밤새 우리 태우고 여기까지 온거야? 미친거 아니야?”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게 재밌어서 웃음만 나온다. 


“여긴 태국이자나. 사고 나서 아무도 안 다쳤으면 됐지 뭐”


그리고 한 시간 후쯤 운전사들이 돌아오더니 다시 버스에 타란다. 그러고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 다시 운전해서 버스는 출발한다. 역시 재밌는 곳이다.


버스는 드디어 방콕에 도착하고 카오산 근처로 들어서니 차가 미친듯이 막힌다. 버스를 오래 타고 온 것은 상관없는데 분명히 연희랑 아침 6시쯤에 만나기로 했는데 시간은 벌써 오전 11시를 향해간다. 여행을 가도 절대 유심칩은 안사는 나는 연희에게 연락 할 방법은 없고 발만 동동 굴렀다. 


카오산에 내리니 오후 12시 반쯤. 14시간 소요예정이라는 버스는 23시간에 걸쳐 나를 여기로 데려왔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연희도 보고 싶고 나랑 처음부터 끝까지 안 맞았던 현주와도 이별이다. 현주는 오늘 저녁 비행기로 다시 카타르로 가야한단다. 그래서 가기전 저녁에 같이 밥이나 먹자하고 혼자 얼른 뛰어 지니네로 돌아왔다. 물론 다시 만날 생각은 없었다.


드디어 지니네로 돌아왔다.


지니네에 돌아가자마자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반긴다. 물론 다 모르는 사람이다.


“혹시 넬리씨? 완전 기다렸어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아침부터 연희씨가 화장하고 넬리씨 기다렸어요. 완전 나쁜 남자네. 사람을 이렇게 기다리게 하고. 얼른 2층으로 올라가봐요. 지금 기다리다 잠들었을거에요 연희씨”


하며 장난스럽게 말해주신다. 2층으로 올라가니 화장하고 이쁜 드레스를 입은채로 자고 있다.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넬리 1일 이용권을 주기로 했다. 오늘은 연희를 위해 다 해줘야겠다. 그리고 잘못된 만남이여 안녕. 다시는 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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