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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May 11. 2020

여행의 끝과 또 다른 시작점

방콕

드디어 집에 가는 날이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온 여행이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아쉬운게 많았다. (결국 마지막이 아닌게 되었지만) 어제 만난 율리도 오늘 같은 시간에 베트남 항공을 타고 한국으로 간단다.


“그럼 같이 여행사 가서 픽업벤 예약해서 같이 가자”


그랬더니 율리는 난처해 하며 이미 여행사에서 표를 끊어놨단다. 내가 어색한지 같이 가기는 싫었나보다. 같이 가려고 했다면 여행사에서 표를 취소하던지 아니면 자기가 표를 끊었던 여행사를 알려주며 거기서 나도 표를 끊어서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그렇게 어색하게 율리는 내가 끊은 시간보다 한시간 일찍이라 먼저 인사하고 지니네를 나갔다. 나도 한시간 후 지니네 바로 앞까지 오는 픽업벤을 탔다. 차에 오르자마자 깜짝 놀랐다.


‘엇’


맨 뒷자리에 율리가 앉아있다. 율리는 눈이 마주치니 어쩔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어색해한다. 표를 끊는 여행사는 다 달라도 픽업벤을 운영하는 회사는 몇 개 없나보다. 


‘안녕?’


어색하게 인사하고 율리 옆자리에 앉았다. 어차피 나는 같이 가자고 먼저 제안했으니 민망하지는 않았다. 같이 가자고 했지만 거절한 율리는 많이 민망해 보인다. 사실 율리의 첫 인상은 그랬다. 어두운 색 피부의 태국사람들과 여행을 하며 검게 그을린 색깔의 여행자들 얼굴 사이에 혼자만 정말 새하얀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강남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칼 같은 숏커트 머리. 사람들과 말도 잘 하지 않고 잘 웃지도 않는 율리를 보고 생각했다.


‘정말 태국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데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옆자리에 앉아서 오랫동안 가게 되다 보니 조금씩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율리는 말을 하면 할수록 이미지와는 다르게 털털하고 푼수다. 어딘가 말도 잘 통한다. 공항에 도착 하려고 하니 빗소리가 차의 창문을 툭툭 하고 때리기 시작한다. 역시 이번에도 여행 징크스다. 정말 떠나기 싫은 곳을 떠나는 날엔 항상 비가 온다.


같이 카운터로 가서 체크인을 하고 나니 시간이 세 시간 정도 남는다.


“비도 오는데 마지막으로 태국에서 맥주 한잔하자”



그렇게 공항 편의점으로 가서 창 맥주 한캔씩을 사서 비 내리는 것이 잘 보이는  한켠에 서서 마지막 태국의 밤을 즐기며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맥주를 다 마셨다.


“야 이걸로 모자란다. 하나씩만 더 마시자”



이번엔 병 맥주를 사서 끝나지 않았으면 했던 태국에서의 날들을 되새겼다. 비행기 시간이 되어서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베트남 호치민 공항으로 날아갔다. 거기서 대기 시간은 네 시간. 술도 한잔씩 했겠다. 시간은 새벽시간이라 졸려 죽겠다. 가방을 지키면서 둘이 돌아가면서 눈을 붙이고 다시 비행기에 올라타서 다음날 아침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에 도착하니 아직은 쌀쌀하다. 태국에서는 그렇게 더웠지만 아직 3월이다. 조리를 신고 있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 다행히 나는 긴팔을 챙겨왔지만 율리는 반팔 밖에 없단다. 그럴줄 알고 비행기에서 담요를 슬쩍 해왔다. 


“자 춥지? 이걸로 덮고 집에 가. 나는 김포로 가서 부산으로 가야하니깐”



쌀쌀맞고 차가울 줄만 알았던 율리는


‘아니야 어차피 오늘 집에 가봤자 할일 없어. 김포공항까지 같이 가줄께’


그렇게 김포공항에서 언젠가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훗날 율리와는 호주에서 같은 집에 살게 된다. 


그리고 끝이라고 생각했던 이 여행이 내 최고 긴 여행기의 시작점이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 다시 태국으로 돌아오기 까지는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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