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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낭만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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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May 12. 2020

다시 시작

방콕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동남아여행을 마치고 다음날 계약서를 써놓고 온 학원으로 바로 출근했다. 3일 정도 일했나. 태국에서 만난 아일랜드인 에마와 저르 커플이 했던 말이 자꾸 귀에 맴돈다.


“넬리야 우리는 너보다 3살 많아. 그런데 우리는 아직 3년 정도 여행 더 하다 아일랜드로 돌아갈꺼야. 나이가 뭐가 문제야? 부모님이 니 인생 살아줄꺼야? 너 아직 하고 싶은 거 다해도 할 수 있는 일 많아. 뭐가 문제야?”


그래. 아직 난 아직 젊다. 난 항상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하며 돈도 벌고 여행도 실컷하며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호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학원에 전화했다.


“죄송합니다. 예전부터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학원은 그만 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학원 원장님한테 전화가 왔다.


“야! 너 이 학원이 그냥 동네 학원 인줄 알아? 너가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은 가는 그런데 인줄 알아? 여기 그런데 아니야. 여기 한달에 만명씩 오고 가는 학원이야. 웬만한 대학교보다 크다고! 정신이 있어 없어? 너 내일 출근 안하면 이제 넌 부산 학원 바닥에 발 못 붙일줄 알어. 알아들어? 이 자식이 동네 양아치도 아니고. 난 분명히 말했어. 너 오늘 저녁까지 다시 연락 다시 줘”



원장님 말대로 이 학원은 부산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학원이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학원이다. 그래도 워낙 결심이 확고 하기도 했고 원장님 태도가 마음에 안들어서 그냥 연락 안하고 그만 둬버렸다. (지금 난 이 학원 강남 본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렇게 호주로 가는 비행기표를 찾는데 생각보다 비싸다. 편도에 70만원대다. 워낙 급하게 갈려고 찾다 보니 더 싼 건 없었다. 그래서 직항 말고 다른 방향으로 찾아봤다. 태국 방콕으로 가는 왕복이 32만원. 그리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호주 골드코스트로 가는 편도 비행기가 22만원. 이거구나. 일단 방콕까지만 가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티켓은 찢어버리고 방콕에서 육로로 여행하면서 남쪽으로 내려가서 쿠알라룸푸르에서 비행기를 타면 되겠다. 그리고 송크란이다. 


송크란은 태국 물 축제다. 세계 10대 축제 안에 들 정도로 전 세계 사람들이 이 축제를 위해 몰려든다. 송크란은 1년 중 4월 셋째주 단 3일 동안 열린다. 마침 표를 끊은 날이 송크란 둘쨋날이다. 


방콕 수완나폼 공항에 도착해 항상 하던 대로 습한 공기를 느끼며 담배를 한모금 빨았다. 그리고 배낭을 매고 있는 여행자들을 모아 같이 택시를 타고 카오산으로 가 다시 지니네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갔다. 


지니네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2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지만 저번 태국여행 때 지니네에서 만났던 수혁이 형이 아직 나를 안자고 기다리고 있었다. 지니네는 그렇다. 늦게 손님이 도착하면 대충 장기로 머무는 사람이나 안자고 있는 사람이 방도 안내해주고 이불도 깔아준다. 나도 그랬다. 훗날 내가 지니네에서 장기로 머물 때 손님이 늦게 올 때는 내가 안내해주고 이불도 깔아주곤 했다.


지니네게스트하우스.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곳이다. 긴 여행을 하며 유일하게 머무는 한인 게스트하우스 이기도 하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잊지 못할 추억들을 만들었다. 푹 잘 쉬는 공간이기도 했고 뜨거운 사랑이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게스트하우스를 가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수혁이형과 편의점에 맥주 한병을 사러 나가니 방콕의 길바닥은 전날 송크란 축제 때문에 흠뻑 젖어있다. 내일은 송크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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