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여느 날처럼 지니네에서 하는 일없이 이리딩굴 저리딩굴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지아누나가 흥분하면서 소리친다.
“얘들아 얘들아 대박! 우리집에도 드디어 예쁜 애가 온다. 넬리야 기선아 너네도 이제 연애해야지”
우리는 별로 관심이 없다. 둘이 죽고 못산다. 이제 익숙한지도 모르겠다. 둘이서 카타르에서 호주에서 그리고 태국에서까지 딱 붙어서 놀고 있으니 여자친구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귀찮다.
“진짜야. 사진봐봐. 이름도 수지야. 얘 지금 다른 숙소에 있는데 여기로 내일 옮기려나 봐”
실물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진은 예쁘게 생겼다. 그래도 우리는 별로 관심없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었다.
“넬리야 너 여기 어딘줄 알지?”
지아누나가 지도를 보여준다.
“네 람부뜨리에서 주욱 꺾어서 들어가서 끝쪽 아니에요?”
“어어 맞아. 어제 걔 수지 있자나. 지금 체크아웃하고 나온다는데 짐이 너무 많대. 가서 좀 같이 들어주고 여기 데려와”
"네? 제가요? 걔는 여기 얼마나 있길래 혼자 들고 오지도 못할 짐을 가지고 있대요?”
“몰라. 가서 그냥 들어주고 맛있는거 얻어먹어”
아침에 별로 할 것도 없고 해서 세수도 안하고 조리를 끌며 터벅터벅 밖으로 나갔다. 밖은 이미 해가 쨍쨍하다. 아침 11시의 방콕의 아침은 햇살 속에 습기를 가득 머금어서 몇 발자국 안 걸어도 땀이 뚝뚝 떨어진다. 이렇게 더운데 짐까지 들어주는데 뭘 얻어먹어야 하지. 얘는 뭐하는 앨까.
횡단보도를 건너 익숙한 길로 땀을 닦으며 걸었다. 덥다. 멀리서 얼굴이 밀가루처럼 하얀 누가 봐도 한국인 여자가 보인다. 짐은 안 보인다.
“안녕하세요? 수지씨죠?”
“아 안녕하세요! 죄송해요 짐이 많아서..”
하이톤의 목소리에 밝은 애다.
“죄송한데 짐이 방에 있는데 무거워서 못 내려놨는데 혹시.. 괜찮으시면..”
방에 들어가보니 대형 캐리어 두 개랑 백팩이 보인다. 캐리어 두 개를 양 팔로 끌고 나와서 계단을 내려 갈 때 하나씩 들어 내리는데 무겁다. 두 개다 무겁다. 이렇게 무겁고 큰 짐을 가지고 얘는 방콕에 얼마나 있는걸까. 양쪽에 캐리어 하나씩을 밀고 등에는 백팩을 들쳐 맸다. 수지는 샤랄라하게 크로스 백하나만 메게 했다.
“죄송해요. 많이 덥죠? 제가 맛있는 거 사드릴께요. 제가 여기 온 지 얼마 안돼서 잘 몰라요. 혹시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오호 그렇단 말이지. 그래 난 꽤 고생했다. 버거킹 정도는 먹어줘야겠다. 라지세트 정도는 먹어줘야겠다. 그렇게 지니네에 도착했다. 지아누나가 반긴다.
“수지씨 오느라 고생했어요. 넬리도 수고많았어. 덥지? 체크인만 얼른 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
친절하게 캐리어를 들어서 가파른 계단을 올라 2층까지 올려주고 밖에 나왔다.
“오빠 뭐 드실래요?”
“버거킹 어때요?”
“네? 이렇게 고생하셨는데 버거킹 말고 좀 괜찮은 거 드세요”
내가 아는 메뉴 중에 제일 비싼 메뉴는 버거킹이다. 태국 물가로 버거킹 정도면 아주 호화로운 식사다.
“아니에요 옛날부터 버거킹 먹고 싶었어요. 가요”
그렇게 카오산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