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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간

바간

by nelly park

다행히 숙취는 없었다. 빨리 술을 마셨지 많이 마시진 않아서였던 거 같다. 내가 제일 먼저 눈을 뜨고 다른 친구들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들 배가 고파 아침을 일단 먹고 자전거를 빌려 지도를 보며 길을 따라 내려갔다. 역시 바간은 정말 덥다. 자전거를 안타고 그냥 걸었으면 몇 걸음 못 가고 그냥 에어컨 방으로 다시 후퇴할 뻔했다. 난 길치라 지도를 잘 볼지 몰라 제임스에게 다 맡기고 뒤따라 갔다. 와이파이 같은 건 없다. 종이 지도에 몸을 맡긴다. 중간중간에 현지인 들에게 길을 물어보기도 한다.


길따라 가다보니 드디어 파고다들이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한다. 앙코르왓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다. 하나만 있어도 신기할 거 같은 파고다들이 길가에 계속 이어져 있다. 규모가 꽤 있어 보이는 파고다 앞에 멈춰 서서 사진도 찍고 감상했다. 진한 붉은색 돌로 만들어진 이 파고다들은 외국인인 우리에게 그저 신기하고 경이롭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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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좀 더 가다보니 뭔가 인위적이지만 멋진 고층 건물이 하나 나타난다. View Tower란다. 거기 올라가면 끝없이 펼쳐진 이 파고다들이 한눈에 다 보일 거 같아 올라 가보기로 했다. 사실 너무 더워서 에어컨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기도 했다.


입장료 5불을 내고 다른 세계로 온 느낌이다. 밖에서 본 이 건물은 바간이랑 안 어울린다는 이질감이 있었는데 들어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에서 파고다들을 내려다보니 정말 장관이다. 거기다 시원한 에어컨까지 있으니 너무 좋다. 잠시 앉아서 지도를 보는데 알고 보니 우리는 옆길로 쭉 내려와 원래 목적지와 다른 곳에 와 있었다. 아무렴 어떤가 좋으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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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숙소쪽으로 발을 돌려 점심을 먹고 잠깐 낮잠시간을 가졌다. 휴식하는 동안에 결국 방콕가는 티켓을 끊어버렸다. 원래 미얀마에 일주일은 더 있을 예정으로 편도로 오긴 왔는데 방콕이 그립다. 생소하고 낯선 미얀마도 좋지만 집이 있고 가족 같은 친구들이 있는 곳이 아른거린다. 신용카드가 없어 카드 서비스피까지 124불에 제임스 카드로 결제를 하고 현금으로 줬다. 다시 간다. 3일 후 밤 비행기다. 설렌다.


피곤했지만 낮잠은 거의 못 잤다. 아까 밥먹고 마신 커피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잘 동안 나도 누워서 푹 쉬다 다시 석양을 보러 나갔다.


이번엔 지도를 잘 보고 올드 바간으로 갔다. 생각보다 꽤 거리가 있었지만 곳곳마다 파고다가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석양보기로 유명한 Shwe san daw 파고다에 도착했다. 앙코르왓에 갔을 때 신발 벗고 높은 탑에 올라가는 것과 비슷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진 않았다. 아직 해가 떠 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해가 저물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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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떠 있어도 정말 멋있었지만 생각한 만큼 사진에 안 담아져 기다리다 거의 해가 저물었을 때 사진을 찍었다. 역시 다른 사진에서 본 것만큼의 작품이 안 나온다. 어쩔 수 없다. 탑에서 내려오니 역시 호객꾼들이 이것저것 판다. 생각보다 미얀마 짯이 많이 남아서 티셔츠 두 장을 7000짯에 사버렸다.


이제 점점 어두워지고 다시 집으로 달렸다. 한참을 가고 있는데 경찰이 우리를 세운다. 뭐가 잘못됐지 했는데 자전거 앞 주머니에 있는 우리 가방 끈을 핸들에 묶어주신다. 석양보고 어두워져서 자전거 타고 가는 외국인들을 노리는 오토바이 날치기가 많단다. 그래서 조심하라고 가방을 깊숙이 잘 넣어주셨다. 역시 미얀마다.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나라다.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어제 갔던 와이파이가 빵빵 터지는 호텔 식당에 가서 밥이랑 맥주 한잔을 시켰다. 아까 탑에서 본 프랑스 여자애들 세명이랑 네덜란드 남자애도 왔다. 제임스가 아까 걔네들이랑 얘기하더니 여기로 불렀나보다. 나랑 마이클은 우리는 투명인간이야. 우리한테는 아무도 말 안 걸어 하면서 웃었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또 즐거운 바간의 이틀째 밤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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