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곤
어제 너무 돌아다녔나 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였다. 그냥 눈떠서 숙소에서 주는 아침을 먹었다. 간단한 바나나와 토스트 한쪽과 커피 한잔이다. 마이클은 피곤한지 더 자고 제임스와 아침을 먹었다. 마이클과 제임스는 그냥 막 여행 하는 것 같지만 되게 똑똑한 친구들이다. 둘 다 이미 석사학위를 마치고 아는 것도 많다.
마이클이 자는 동안 제임스와 세계사에 대해서 이야기해봤다.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많아 서로 아는 역사에 대해서 공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유럽역사, 동남아역사, 그리고 중동역사도 나왔다. 확실히 아시아인인 내가 바라보는 시선과 서양인인 제임스가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다. 꽤 흥미롭다.
숙소에서 좀 쉬다 제임스는 더 더워지기 전에 조깅하러 간다고 나가고 나는 자전거를 타고 어제랑 다른 길을 가봤다. 나중에 다 같이 또 오겠지하고 한시간 정도 있다 돌아왔다. 너무 덥다. 혼자서 목적없이 이 더위에 돌아다니는 건 힘들다. 어제는 목적이 있고 함께 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더운줄도 모르고 즐겁게 돌아다닐 수 있었나보다.
배가 고파져 점심을 먹고 낮잠을 꽤 잤다.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로 정말 푹 잤다. 다시 저녁쯤 맥주 한잔하고 시원한 에어컨 밑 침대위에서 폰에 다운로드 받아온 만화책을 좀 보니 하루가 벌써 끝났다.
다음날 아침 8시 반에 바간에서 탄 버스는 저녁 6시가 넘어서야 다시 양곤에 도착했다. 제임스와 마이클은 만달레이로 간다고 나보다 먼저 떠났다. 택시를 잡아타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호카이네 주소가 적혀있는 종이를 기사님에게 내보였다. 호카이와 아리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호카이 친구들도 기다리고 있었다.
둘쨋날 양곤에서 보고 싶었던 쉐다 파고다 야경을 보러 가기로 했다. 양곤에서 제일 유명한 볼거리를 안보고 갈 뻔했다. 대충 밥을 먹고 택시를 타고 쉐다 파고다 입구에 도착해 표를 끊고 안쪽으로 산책 하듯 걸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여기를 찾는 것 같다. 나 같은 외국인 관광객은 거의 안보이고 가족 단위의 미얀마 사람들이 피크닉을 오듯 오는 것 같다.
덥고 축축한 밤에 황금색 사원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바간에서 본 사원들도 멋있었지만 또 다르다. 이 많은 사원들이 다 진짜 금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멋진 조명과 어우러진 반짝반짝 누런 금색이 눈이 부신다. 연신 감탄을 외쳤다.
하루 종일 이동해서 못 쉬고 움직였더니 피곤해서 일찍 잤다. 이제 다시 올 수 있을지 확실치 않은 미얀마의 마지막 밤이다. 아리나가 정성스럽게 펼쳐준 모기장안에서 잠이 잘 올 것 같지 않았지만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다섯시에 일어나 양곤에서 별로 풀지도 않은 짐을 싸서 여미고 잠에서 덜 깬 아리나와 호카이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낯선 이 나라에 와서 짧지만 정말 많은 추억을 만들어 준 이들에게 감사한다. 한국어 시험에 꼭 통과해서 다음에는 한국에서 꼭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택시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체크인하고 다행히 시간이 좀 남아 남은 짯으로 간단한 요기를 하고 7시 반에 미얀마를 떠났다.
잠깐 눈을 부치고 일어나니 벌써 방콕에 곧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온다. 방콕 돈무앙 공항까지는 두시간 남짓 걸렸다. 수지가 공항에 데리러 온다고 했었다. 와이파이를 잡아서 폰을 보니 이미 공항에 도착해 있다고 한다. 끝에서 끝까지 돌아다녀봤지만 수지는 안보인다.
“아무리 찾아도 안보이는데 어디야?”
“나 게이트 2번 앞이야!”
“나도 2번 앞인데 안보이는데. 여기 택시 잡는 곳 근처야”
“택시? 그런거 없는데? 어디야?”
수지는 돈무앙 공항이 아니고 수완나폼 공항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