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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Jan 10. 2021

히메지의 밤

히메지

히메지역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히메지성이다. 역에서 나오자마자 정면에 히메지성에 불이 켜져 반짝반짝 빛난다. 감동하는 것도 잠깐이다. 에어컨이 빵빵한 전철에서 내리자마자 훅 하고 들어오는 찜통더위는 저녁에도 예외는 없다. 땀이 또 비 오듯 주루룩 흐르기 시작해서 얼른 비어가든으로 들어갔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술집이다. 꽤 많은 종류의 맛있는 음식들이 뷔페 식으로 쫘악 옆으로 깔려 있고 맥주잔도 일인당 하나씩 지급되어 맥주가 더 마시고 싶으면 언제든지 마실 수 있게 되어 있다. 불금이라 그런지 오늘은 어제보다는 사람이 많다. 가족 단위, 일 마치고 온 듯한 넥타이 부대의 회사원들 그리고 우리처럼 친구끼리 술 한잔 하러 온 사람들까지 가지각색이다.


일단 접시를 손가락에 끼어 두 개씩 들고 다니며 음식을 퍼 담아 산을 쌓았다. 테이블에 얼른 갖다 놓고 맥주도 가져와서 건배했다. 한동안 우리는 말이 없었다. 눈 앞에 있는 음식 없애기에 바빴다. 세 번 정도 왔다 갔다 한 후에야 천천히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맥주도 일인당 세 잔씩. 접시도 거의 5개 정도씩을 해치운 우리는 배가 불러서 더 이상 술도 밥도 들어가지 않는 상태가 되어 간단하게 한잔 더 하러 밖으로 나왔다. 


과연 여기가 효고현 최대의 도시인 히메지의 불금 맞나.


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눈으로 보고 셀 수 있을 정도다. 휑하다. 술집도 많이 없는 것 같다.


“저희도 거의 2년만에 히메지에 왔는데 도시가 거의 죽었네요. 이제는 다들 산노미야로 가나봐요”


한 시간 정도 적당한 술집을 찾아 다니다 더워서 헥헥 대다 그냥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그래도 유스케가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다시 밝아져서 다행이다. 


오늘부터는 유스케집이 아닌 카즈키네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이번 여행은 4박 5일 일정이다. 이틀은 유스케네에서 지냈으니 오늘은 카즈키네로 갈 차례다. 카즈키는 웃으며 말한다.


“넬리형. 제 방은 스모킹 프리에요. 거기다 24시간 에어컨도 풀 가동이에요!”



유스케네 집도 너무 아늑하고 좋았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더위에는 카즈키네가 너무 반갑다. 자메이카 국기가 벽에 붙어 있고 자메이카 풍의 커튼이 인상적인 방이다. 후다닥 샤워를 하고 에어컨을 켜고 누웠다. 담배 피우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담배를 피워도 된다. 


“뮤직 이즈 마이 라이프 데스!”


라고 말하는 귀여운 카즈키는 방에 있을 때는 항상 음악을 켜 놓는다. 100곡 중 99곡이 레게 음악이다. 정말 레게 음악에 푹 빠져있다. 그러다 갑자기 진지해 져서는


“넬리형. 저는 오토바이 타다가 사고 나서 죽고 싶어요. 아니면 아프리카에서 총 맞아 죽고 싶어요”


귀엽다. 카즈키는 아직 19살이다. 10대다. 한참 겉멋이 들어 있을 나이다. 


“너가 내 나이 되면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어 할지도 몰라. 지금을 즐겨. 내일이 없을 것처럼 놀고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살지 말고 너도 나처럼 여행하고 살고 싶으면 너만의 무기를 만들어.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게”


그러니 카즈키는


“저는 스시 만들 줄 알잖아요. 내년에는 조리사 자격증도 딸 거에요”


벌써 초밥집에서 알바한지 2년이 넘었단다. 꽤 인정도 받고 있단다. 기특한 아이다. 이렇게 또 일본에서의 하루가 간다. 내일은 땀에 젖어 깨지 않겠지. 아. 담배 냄새가 옷에 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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