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 가는 길
아무리 생각해도 기차표를 잘못 끊은 것 같다. 아침 9시 55분에 출발해 다음날 새벽 4시 15분 도착이면 하루 종일 기차 안에서 열여덟 시간이다. 생각해보면 별거 아니다. 전에 라오스에서 베트남으로 갈 때 버스로 서른한 시간 동안 갔었다. 버스는 그래도 중간중간에 내려서 다리도 펴고 시원한 공기도 마실 수 있다. 그리고 담배도 필 수 있다.
분명히 슬리핑 기차로 달라고 몇 번이나 말하고 확인했었다. 침대는커녕 뒤로 절대 젖혀지지도 않는 90도 직각의 딱딱한 하드시트다. 여기에 세 명씩 마주보고 앉는다. 앉으면 앞사람과 거의 무릎이 닿기 직전이라 절대 다리를 펼 수 없다. 내 자리는 통로 쪽이다. 지금까지 다른 나라를 여행 해본 곳에서는 기차든 버스든 통로든 창가든 거기서 거기였다. 중국 기차는 창가가 제일 좋은 자리 같다.
인구가 워낙 많아서인지 입석으로 가는 사람이 너무 많다. 한국에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로 세시간 가도 입석은 엄두가 안 나겠지만 중국은 사이즈가 다르다. 화장실 한번 가려면 통로에 서 있고 앉아 있는 사람들을 다 뚫고 갔다 와야 했다. 그리고 거의 십 분에 한번씩 음료수차, 밥차, 과일차들이 연속으로 지나다닌다. 그때마다 통로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다 일어나고 서 있는 사람들은 자리를 비켜주느라 통로 쪽으로 나와있는 내 무릎을 친다. 십 분에 한번씩 카트에 부딪히고 사람들에게 부딪히느라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잡상인은 거의 한 시간에 한번씩 온다. 정확히 따지면 잡상인이 아닌 것 같다. 기차 직원인 것 같다. 가슴팍에 버젓이 이름표도 있다. 아주 큰 소리로 외치며 무언가를 판다. 왜 하필 내 자리는 거의 중앙 쪽인지 항상 내 자리 바로 옆에서 미친 듯이 큰 소리로 외친다. 한국에서 지하철을 타면 가끔씩 타는 잡상인 아저씨가 한 시간에 한번씩 내 옆에서 물건을 판다는 말이다.
나와 마주보고 앉은 바로 앞의 아저씨는 전화가 오면 이 열차 칸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화내용을 알리고 싶은지 전화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큰소리로 외친다.
나보다 훨씬 고생한 건 이것을 통로에서 섰다 앉았다 하며 버티는 입석표를 끊은 사람들이다. 어쩔 수 없이 입석을 끊은 건지 이것이 일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단하다. 특히 내 옆에 서 있던 중국인 커플 여자는 10센티는 되어 보이는 하이힐까지 신고 열여덟 시간을 음료수차가 지나가면 일어서서 비켰다 옆 사람이 잠깐 화장실 가면 거기 앉았다 자리 주인이 다시 오면 또 비켜주고 하면서 나랑 같은 시안 역에 내렸다.
다음에 중국에서 멀리 갈 때는 꼭 슬리핑 기차로 그게 안되면 마주보고 가지 않는 걸로 표를 끊어야겠다. 중국어를 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얘기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정확히 새벽 4시 15분이다. 거의 한숨도 못 잤다. 북적북적한 박스 안에 갇혀있다 나오니 세상은 고요하다. 주위는 어둡고 택시 기사들만 많다. 열여덟 시간 동안 참았던 담배를 한 모금 길게 태우고 있으니 택시기사들이 몰려든다. 새벽이라 아직 버스는 없다. 이 시간에 택시는 비싸서 택시 기사들을 뿌리치고 쑤저우 숙소에서 가져온 브로슈어에 나와 있는 지도를 보고 그냥 걷기로 했다.
처음 중국에 오기 전 중국에 가면 조심하라는 소리를 워낙 많이 들어서 밤에 혼자 걷기가 조금 불안했다. 사람 없는 시간의 밤거리를 지도 보며 열심히 걸었다. 최대한 가로등이 있는 큰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 정도 걸려 숙소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못 자고 한 시간 동안 긴장하며 무거운 배낭을 매고 걸었더니 쓰러질 것 같다.
도착하니 아직 방이 없단다. 일단 여덟 시 정도까지 기다리라고 해서 로비에 있는 소파에서 한숨 잤다. 일곱 시쯤 되어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오고 가는 소리에 잠을 깼다. 여덟 시가 되어도 직원이 아무 말이 없길래 졸면서 좀 더 기다리다 아홉 시쯤 되어서 방 있냐고 물어보니 좀 비싼 4인실 도미토리밖에 없다고 한다. 다른 방은 없냐고 하니 지하에 에어컨 없는 방이 있다고 한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30원 (5천원 정도)에 YHA 멤버 할인 하면 25원이다.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