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
햇빛이 안 드는 좁은 6인실 방에 짐을 풀고 얼른 샤워를 하고 한숨 잤다. 기차로 장시간 이동하고 배낭 매고 한 시간을 걸었으니 오늘은 푹 쉬기로 했다. 대충 근처에서 밥을 먹고 좀 더 걸어가다 보니 회족 전통시장이 나온다. 남자들은 회족 특유의 모자인 흰색 모자를 많이 쓰고 있고 여자들은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있다. 눈이 가늘고 긴 다른 중국인들과 생김새도 미묘하게 다르다.
조금 둘러보고 다시 숙소에 들어와 테이블에 앉아 쉬고 있는데 중국인 여자 두 명이 말을 걸어온다. 머리 스타일이 특이하다고 하며 사진 찍어도 되냐고 한다. 그래서 같이 사진을 찍고 친구가 되었다.
이 친구들의 이름은 앨리스와 잉. 둘 다 상하이 출신인데 지금은 같이 잠깐 중국 여행 중이라고 한다. 그렇게 영어를 꽤 유창하게 하는 이 친구들과 이야기 하다 좀 출출해져 셋이서 택시를 잡아타고 시안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라오찐모 가게로 갔다. 중국식 빵 속에 양고기를 넣어먹는 햄버거 같은 건데 맛이 괜찮다.
밥을 먹고 그 친구들은 다른 관광지로 간다고 하고 나는 피곤해서 다시 숙소로 돌아와 쉬다 산책 겸 회족 야시장을 슬쩍 둘러보고 시안 성벽을 따라 좀 걷고 시안의 첫날을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앨리스와 잉이 관광지 구경을 마치고 돌아와서 숙소 일층에 바겸 레스토랑에서 파티를 한다고 한잔하러 가기로 했다. 같은 방 쓰는 중국인 남자 마이크도 다 같이 놀고 조금은 늦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직 피로가 아직 풀리지 않았는지 졸려 죽겠지만 아침 여덟 시에 잉과 앨리스를 로비에서 만나기로 해서 일곱 시 반쯤 일어나 씻고 준비하고 앉아 있었다. 어제 밤에 술 한잔하며 오늘 아침에 다같이 병마용으로 가기로 약속했었다.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어제 또 같이 한잔했던 마이크가 지나가길래 오늘 별일 없대서 합류하기로 했다. 여덟 시 반쯤 되니 잉이 내려온다. 앨리스는 아직 준비 중이란다. 한국에 코리아 타임이 있다면 중국엔 차이나 타임이 있나 보다.
앨리스를 기다릴 겸 먼저 내려온 잉에게 부탁했다.
“혹시 중국 기차표 사이트나 전화 같은 걸로 둔황 가는 기차 예약할 수 있어?”
잉이 노트북으로 이것저것 찾아보더니 둔황 가는 표를 신용 카드로 예약결제 해줬다. 355원 (6만 3천원 정도) 이다. 그리고 바로 현금으로 줬다. 쑤저우에서 시안 오는 기차에서 너무 고생해서 23시간 슬리핑 기차로 예약했다. 중국인에게 부탁했으니 이번엔 확실할 것이다. 이번엔 좀 편하게 가고 싶다.
앨리스가 드디어 내려왔다. 숙소 앞에서 603번 버스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갔다. 내린 터미널에는 병마용으로 가는 버스가 몇 개 있었는데 각 버스마다 적어도 200미터 넘게 기다리는 줄이 있다. 최소 한 시간 이상은 기다릴 것 같다는 결론이 나서 돈 조금 더 내고 넷이서 택시를 잡아타고 화칭츠라는 곳으로 갔다. 거기가 어떤 곳인지도 전혀 몰랐지만 택시 타고 내려서 화칭츠를 구경하고 거기서 다시 버스 타고 병마용 가는 게 더 싸고 이익이라는 이 친구들의 말에 그러기로 했다.
앨리스가 시안에 현지친구가 있단다. 그 친구가 표를 구해준다고 한다. 매표소로 가서 앨리스가 갑자기 전화를 하더니 표 검사하는 아저씨에게 바꿔준다. 그리고 우리를 표 없이 그냥 통과 시켜준다. 어떻게 된 건지 몰라서 얼떨떨하게 70원 (만 2천원 정도) 이나 아꼈다.
공짜로 들어온 이곳 화칭츠는 옛날 당나라 현종 그리고 양귀비가 목욕을 하던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관심 없던 나에게는 잘 정돈된 중국 정원이었다. 역사 공부를 더 하고 올걸 그랬다.
다시 버스를 타고 병마용으로 갔다. 또 매표소에 가더니 앨리스가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직원에게 바꿔주니 우리 네 명이 들어갈 수 있는 특별허가증을 내준다. 그런데 표 검사하는데 갔더니 내 외모를 보고 외국인은 여기서 해당 안 된다고 못 들어 간단다. 그래서 옆에 있는 중국 사람한테 산 표를 나한테 주고 그 사람이 우리 허가증으로 들어가주면 안되냐고 부탁하니 흔쾌히 허락해줘서 그렇게 또 150원 (2만 6천원 정도)을 안내고 공짜로 들어왔다.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병마용은 박물관 같은 구조였다. 나는 건물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것을 구경하는 거에는 관심이 많이 없다. 일단 진시황의 병마용들이 쭈욱 늘어서 있는 곳으로 갔다. 확실히 웅장했지만 기대를 너무 많이 했는지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거기다 많은 곳이 확장보수 공사중이라 못보는 곳도 많고 훼손된 곳도 많이 보였다. 실내에서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비가 꽤 쏟아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얼른 택시를 타고 밥을 먹으러 갔다.
도착하니 이미 외관부터 크고 화려한 레스토랑이다. 아까 전화해서 표를 구해준 친구가 오랜만에 보고 싶다고 그 레스토랑에서 만나자고 했다고 한다. 그 친구의 어머니도 오셨다. 우리가 정말 열심히 먹어도 절대 끝내지도 못할 비싼 음식들을 엄청나게 시켜주시고 우리끼리 재미있게 놀라고 하시고 돈만 지불하고 어머니는 가셨다. 아무래도 이 정도 가격의 음식과 전화 한 통에 비싼 표가 공짜가 되는 걸 보니 이 어머니는 시안 지역의 큰 유지인 것 같다.
교통비 빼고는 돈을 거의 안 쓰고 세계 문화유산을 구경하고 고급음식을 배터지게 먹은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