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슈에서 비슈케크 가기
어제 국경을 넘는다고 너무 고생했는지 피곤하기도 하고 간밤에 모기와의 싸움에 잠을 조금 설쳤는지 온몸이 뻐근했다. 오늘은 목표인 키르기즈스탄의 수도 비슈케크로 가야 한다. 키르기즈스탄이 여행 계획에 아예 없었던 나는 아무 정보도 없었고 아무 생각도 없었다. 운 좋게 여행 고수 두 명과 함께 다니면서 어디서 어떻게 또 어디로 이동하는지 듣고 그냥 따라 움직였다.
일단 큰 길이 있는 시내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하루 만에 달라진 마을의 풍경에 연신 감탄하며 길거리에 있는 상점 하나하나 사람들의 생김새 하나하나 눈에 새겨 넣으며 걸었다.
버스터미널이라고 하긴 뭐하고 미니벤이 쫘악 정렬해 있는 곳으로 가서 비슈케크 행을 찾았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몇몇 아저씨가
‘비슈케크? 비슈케크?’
하면서 우리를 잡는다. 이건 또 어떻게 안거지? 적당한 가격에 흥정을 해놓고 한 시간 후 출발이라 러시아권 대표 음식 라그만을 먹었다. 위구르족이 먹는 반미엔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느낌이다. 역시 맛있었다. 그리고 키르기즈스탄 전통 모자를 쓰고 있는 아저씨가 옆에 앉아 이런저런 말을 걸어왔다. 무슨 말인지는 하나도 모르겠지만 손짓발짓을 하면서 삼십 분 정도는 얘기한 것 같다. 인상 좋은 아저씨다.
미니벤을 기다리다 카슈가르에서 만난 일본인 타쿠야를 만났다. 이 친구는 여행사에서 표를 끊어서 국제버스로 오슈까지 한번에 왔단다. 우리는 버스랑 택시랑 미니벤을 타고 와서 밤 열한 시쯤에 오슈 시내에 떨어졌는데 이 친구는 새벽 세시에 떨어졌단다. 거기다 우리보다 가격도 2배 정도 더 지불했다. 역시 여행고수랑 같이 다니니 이득이 많다.
타쿠야까지 그룹에 조인하여 넷이서 비슈케크로 향했다. 오슈에서 비슈케크까지는 300km 정도. 이틀 내내 이동만 한다. 뭐 어찌됐던 좋다. 말도 안 통하고 정보도 없는 곳에서 사지 멀쩡하게 이렇게 여행을 할 수 있으니. 다섯 시간 정도 걸려서 드디어 도착한 비슈케크.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사쿠라게스트하우스다.
일본인 아저씨와 키르기즈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이 곳은 키르기즈스탄 여행자 사이에서 꽤 유명한 모양이었다. 미니벤 정류장에 내려서 지도를 보고 찾아가긴 하는데 잘 몰라서 사람들한테 근처에 있는 큰 백화점 이름을 대니 바로 알려줬다. 그 백화점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여기에 머물면서 길치인 나에게 유일한 생명줄 같은 이름이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사쿠라게스트 하우스 도착.
당연히 예약을 안하고 온 우리에게 방은 없었다. 모든 방이 만실이란다. 아는 곳이라고는 여기밖에 없는데. 내일이면 도미토리 방 몇 개가 빠질 거라며 옥상이라도 괜찮다면 거기서 하루 묵겠냐고 물어보신다. 대신 도미토리 방이 400솜 (7000원 정도) 인데 200솜만 내라고 하신다. 오케이 하고 옥상에 짐을 풀었다.
키르기즈스탄에는 숙소가 많이 없어서 여기로 몰려서 그런지 옥상에서 숙박을 하는 사람이 꽤 있나 보다. 옥상 바로 옆에 접이식 간이침대가 꽤 많이 있었다. 옥상에 간이 침대를 펴고 모기장도 없이 그냥 배낭을 위에 놔두고 일단 씻었다.
옥상에서의 하루라.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낭만적이었다. 1층으로 내려가니 조그만 공용 키친이 있고 사람들이 둘러 앉을 수 있는 테이블과 기다란 벤치. 그리고 수영장이 있었다.
여행자들은 당연히 일본인들이 많았고 서양인들도 꽤 보였다. 한국인은 아직 안보였다. 하긴 나도 여기 오기 전까지 키르기즈스탄이 뭔지도 몰랐으니 생소할 것이다.
주변 슈퍼에서 맥주 한 캔이랑 간단한 요기거리를 사서 먹고 비슈케크 입성을 자축했다. 이제 진짜 키르기즈스탄 여행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더 설레는 여행.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