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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슈케크

비슈케크

by nelly park

비슈케크에서의 일상은 매우 단순했다. 단순하다 못해 평화롭기 짝이 없었다. 그 동안의 중국여행과 중국에서 여기까지 국경 넘기 그리고 다시 오슈에서 이곳으로 오기까지의 여정에 지칠 대로 지쳤는지 대부분의 시간을 숙소 1층의 벤치에서 앉아서 사람들과 이야기 하며 보냈다. 그러다 사람들이 밖으로 하나 둘씩 나가면 나는 노트북을 방으로 가지고 들어와 외장하드에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영화들과 만화책을 보며 푸욱 그것도 아주 푸욱 쉬었다.


정보도 없고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던 나는 나름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긴 했었는데 정보도 많이 없고 그다지 땅기는 곳도 없었다. 그리고 비슈케크에 있는 대부분의 다른 여행자들도 다른 중앙아시아로 가기 위한 거점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키르기즈스탄은 유일하게 중앙아시아 국가 중에 비자 프리인 나라였다.


얼떨결에 여기 와서 멍하게 있다 나도 여기까지 온 이상 다른 중앙아시아 나라들도 가봐야겠다 하고 구글맵을 켜고 주변의 나라들을 찾아봤다. 어디선가 이름은 들어봤지만 아직은 생소한 나라 이름들.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그리고 스탄, 스탄, 스탄


지난 3일 동안 멍하게 있으면서 친구들이 생겼다. 원래 중국에서 같이 여기로 넘어온 아키. 카슈가르에서 보고 오슈에서 우연히 다시 본 타쿠야. 허리까지 오는 긴 장발에 스타일리쉬한 형 사토시. 그리고 지금 세계 일주 중이라는 여자 나츠코. 그리고 나. 이 각자 다른 루트와 사연을 가지고 여행을 떠나 이 곳 키르기즈스탄 비슈케크에서 모인 우리는 타지키스탄으로 같이 떠나기로 했다.


타쿠야가 먼저 말했다.


“타지키스탄에 있는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파미르 고원을 통해서 국경을 넘을 텐데 거기 가려면 지프를 쉐어해서 가야해. 사람이 많을수록 좋아. 같이 가자”


어차피 무계획인 나는 당연히 오케이 했고 매일 같이 밥 먹고 행동하던 다른 멤버들도 같이 오케이 했다.


아키와 함께 타지키스탄 대사관으로 갔다. 어떻게 갔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론니 플레닛에 나와 있는 대로 숙소 앞에서 로컬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가서 도착했다. 준비 서류는 여권, 신청비, 여권 사진 2매가 전부였다.


타지키스탄 비자를 받고 파미르 고원 퍼밋을 또 따로 받아야 했다. 한국인과 일본인인 우리는 아무 문제 없이 서류를 제출하고 5일 있다 다시 오라는 말을 듣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카자흐스탄 비자를 신청하러 아키와 또 다른 버스를 타고 이번엔 카자흐스탄 대사관으로 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별거 없었다. 신청비와 여권 사본, 그리고 사진이 다였다. 얼마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 나는 것은 나라마다 신청비가 천차만별이었다. 미국 사람은 한국 사람보다 4배가 넘는 돈을 내야 했던 걸로 기억난다. 잘 사니까 돈 더 내라 뭐 이런건가 보다.


비자를 신청해놓고 비자가 나올 때까지 꼼짝없이 비슈케크에 머물러야 했던 우리는 잠깐 다른 도시로 갔다 오기로 했다. 이번엔 나츠코의 의견대로 이식쿨로 가기로 했다. 이식쿨은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 투명도를 자랑하는 엄청난 크기의 담수호란다.


타쿠야는 안 간단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거긴 시골이라서 와이파이 안될꺼 아냐. 나 블로그 써야 해”


이상한 놈이다. 자기는 블로그 쓰기 위해 세계일주를 나왔단다. 여행 도중에 노트북을 잃어버리면 여행 중단하고 일본으로 돌아갈 거란다. 그때부터 타쿠야의 별명은 블로그소년이 되었다. 뭐 요즘은 타쿠야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가는 것도 같다. 블로그는 생각보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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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키. 사토시상. 나츠코. 나 그리고 급 같이 가기 된 유미짱. 이 다섯 명의 멤버는 비슈케크 터미널로 가서 이식쿨행 미니벤을 타고 맨 뒷자리에 앉았다. 한 시간 후 출발이라고 해서 앉아 있는데 앞자리에 또 다른 한 무리가 탄다. 젊은 동양인 무리였는데 생소한 언어를 쓴다. 물어보니 카자흐스탄에서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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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일본인 한국인 그리고 카자흐스탄 여행자들의 키르기즈스탄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뜻밖의 대중교통에서의 보드카 파티. 우리는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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