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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생일날의 트레킹

알틴 아라샨

by nelly park

온천을 좋아하는 일본인들 거기다 트레킹까지 좋아하는 아키 덕분에 생일 날 고생하게 되었다. 내 생일 당일 날 굳이 트레킹을 가자고 한다.


나츠코는 여행 루트가 좀 변경되어 카자흐스탄 비자 받은 김에 이틀이라도 카자흐스탄 찍고 온다고 하고 떠나고 블로그 소년 타쿠야는 숙소에서 블로그를 쓰고 나와 아키 그리고 사토시상은 가방을 메고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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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터미널로 가 악수행 미니벤을 타고 악수로 달렸다. 뜻하지 않은 세 남자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중간중간에 사람들이 내리고 또 타고 좀 쉬고 하며 세 시쯤 되어 악수에 도착했다.


악수에서 다시 미니벤을 잡아 타고 알틴 아라샨 트레킹 시작지점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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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쯤부터 트레킹 시작. 언제 도착할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단 걷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흔하다면 흔한 높은 침엽수들이 끝도 없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길 옆으로는 냇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고 하늘은 티 없이 맑았다. 어제 비가 조금 왔었는지 질퍽질퍽한 진흙탕 길을 걷고 또 걸었다. 항상 조리를 신고 여행하지만 여분으로 챙겨온 운동화 한 켤레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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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유목생활을 하는 키르기즈 민족들한테는 말타기가 아주 흔한 일인가 보다. 말을 타고 산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꽤 보인다. 큰 배낭을 메고 이상한 행색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모두들 손을 흔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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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참 걷다 보니 전통 결혼식이 있었는지 한껏 차려입은 키르기즈 가족들이 지나간다. 아이들과 아주머니들은 수줍은 듯 미소를 지었지만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흔쾌히 포즈를 잡아주신다. 이것저것 말을 해보고 싶었지만 역시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아 작별인사를 하고 또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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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세시간 쉬지 않고 걸었더니 너무 힘들다. 조금씩 걸음걸이가 늦어지고 질퍽질퍽한 진흙탕 길에 짜증이 날 무렵 뒤에서 트럭이 지나간다. 이거다 싶어 엄지손가락을 척 올리고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니 우리 앞에 차가 선다. 목적지 설명이 전혀 안되 일단 트럭에 올라타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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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퉁불퉁한 진흙 길을 점프하며 트럭은 달린다. 시원한 바람은 그 동안에 흘린 땀을 식히고 쉬지 않고 걸은 다리에 휴식을 주었지만 트럭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기 위해 손잡이를 너무 꼭 잡고 있었더니 이번엔 팔에 쥐가 날 지경이다. 그렇게 삼십 분 정도 달리고 기사님은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우리를 내려주신다.


다시 또 걷기가 시작되었다. 이번엔 엄청난 경사의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진다. 목적지는 어디인지 모르겠고 다리는 아프고 날은 점점 어두워져 가는 것만 같고 그 와중에 풍경은 너무 아름답고. 절대 잊혀지지 않을 내 20대 마지막 생일이다.


여름의 키르기즈스탄이라 해가 금방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아홉 시쯤 되니 이제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다. 아직 산을 오르고 있는 우리는 이제는 앞이 전혀 안보이기 시작했다. 머리 위의 수많은 별들과 달들이 없었다면 가야 할 방향도 잃고 산에서 미아가 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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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안보이니 진흙탕 길에 자꾸 발이 빠지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깜깜한 밤의 산길을 계속 걷는다. 아키가 하늘을 보더니


“저게 북극성이야. 그럼 저쪽이 북쪽이니까 일단 이쪽으로 계속 걸어보자”


좋다 싫다 토를 달 수도 없다. 일단 걷다 보면 뭔가 나오겠지. 땀 범벅이 되고 깜깜한 밤을 그렇게 두 시간 정도 더 걸으니 저 멀리 앞에 희미한 불빛이 보인다. 저거구나 하고 미친 듯이 속력을 내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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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도착한 곳은 산 중턱의 간이 숙소였다. 도착하니 밤 열한 시쯤. 이미 방은 없고 식당 바닥에 간이 침낭이라도 깔고 자겠냐고 해서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휴. 도착했다. 이렇게 산을 돌아다니는 곰한테 잡아 먹히나 했다.


주인 아주머니가 간단하게 따뜻한 수프를 내어 주셨다. 그렇게 앉아 있다 밖에 담배를 피러 나가니 동양인 여자가 있길래 말을 거니 일본인이었다.


“이제 도착하셨어요?”


그렇다고 하니 언제 출발했냐고 묻길래 네 시쯤 출발한 거 같다고 하니 놀라며


“그럼 여길 여섯 시간만에 올라온 거에요? 트레킹 입구부터 여기까지 열두 시간 코스인데 뛰어오셨어요?”


그렇구나. 우린 여길 무식하고 또 무식하게 걷고 또 걷고 뛰고 차도 잠깐 얻어 타고 열두 시간 동안 와야 할 거리를 여섯 시간만에 왔구나. 하아. 힘들다. 내 20대 마지막 생일 이렇게 뜻 깊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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