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슈
밤새 이동해서 침대에 눕자마자 다들 기절한 듯 잠이 들고 몇 시간 지나서 다시 로비에 모였다. 아침에는 정신도 없고 피곤하기도 해서 지프 가격을 제대로 흥정 못했었다.
다행히 우리는 다섯 명. 지프를 쉐어하면 가격부담은 그렇게 크지 않다. 오슈에서 지프 쉐어를 위해 동행자를 모으는 사람도 꽤 있었다. 사람이 모여야 그만큼 부담도 줄어들고 그렇다고 아무나 하고 같이 가긴 또 그렇고 해서 오슈에서 타지키스탄으로 가는 사람이 나타나길 마냥 기다린다.
정확한 가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슈에서 국경을 넘어 타지키스탄의 고산 도시 무르갑까지 가는 걸로 결정하고 1인당 50불 정도 낸 것 같다. 대중교통이 아니고 기사가 직접 국경을 넘어 우리를 실어 나르는 것이니 비쌀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기사는 다시 무르갑에서 또 오슈로 오는 사람이 모이길 기다려야 할 것이니 그 정도 가격은 내기로 했다.
오슈로 온 목적이 해결이 되고 배가 고파져 다같이 시장으로 가봤다. 비슈케크 시장보다는 훨씬 규모가 작고 로컬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시장 구경을 이것저것 하고 또 라그만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음. 우리나라 김치찌개도 마찬가지겠지만 식당마다 맛이 조금씩 다 다르다. 각 도시마다 라그만을 먹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다른 음식이 먹고 싶다.)
밥을 먹었으니 소화도 시킬 겸 오슈를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가이드북이 없으니 뭐가 유명하고 어디를 가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저 멀리 보이는 언덕으로 가보기로 했다.
가까이 가보니 언덕이라기보다는 낮은 산이다. 짧은 트레킹 코스가 있어 길이 난 곳으로 쭈욱 올라가봤다. 여기는 가족 단위로 산책을 자주 오는 공원 같은 개념인 것 같다. 히잡을 둘러쓴 아주머니들이 우리를 보고 신기해한다. 비슈케크보다는 확실히 오슈 사람들 얼굴이 더 진하다. 그리고 무슬림도 많은 것 같다. 타지키스탄에 가까워 지나보다.
정상에 올라가니 조그만 동굴 같은 쉼터에서 쉬는데 너무 귀여운 쌍둥이 꼬마 아가씨가 있어 인사하고 사진을 찍어줬다. 아이들보다 어머니가 더 좋아하신다.
다음 날 아침.
타지키스탄행 지프는 내일 아침 출발이라 하루 더 머물기로 한다.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나 담배 하나 물고 밖에 앉아 있는데 한 청년이 말을 건다.
“오슈게스트하우스에 머물러요?”
그렇다고 하니 자기도 거기서 일 한단다. 투르크계와 페르시아계 그리고 키르기즈계까지 섞인 혼혈이라고 말하는 잘생긴 이 친구 이름은 하만. 오늘 뭐하냐고 묻길래 내일 타지키스탄으로 가서 별 거 없다니 자기가 재미있는데 데려가 주겠단다. 그 대신 점심시간부터 자기가 오프니 조금 기다려 달란다. 어차피 우리 일행들도 지금 다 자고 있으니 노 프라블럼이다.
배가 고픈지 하나 둘씩 눈을 뜨더니 간단히 밥을 먹고 다같이 하만과 함께 버스를 탔다. 한 이십 분 정도 가서 내려 조금 걸어가니 호수라고 하긴 뭐하고 강도 아니고 시냇물이 흐르는 곳이 나온다. 거기에서 너도 나도 수영을 하고 있었다. 여기도 가족단위로 많이 오는 것 같다.
신이 난 우리는 바로 위통을 벗고 뛰어들었다. 그런데 물살이 생각보다 쌔고 시냇물 중앙은 발이 안 닿을 정도로 깊다. 뭐 그래도 좋다. 동네 꼬마들과 물 장난도 치고 다이빙도 하고 미친 듯이 뛰어 놀았다.
어지간히 놀만큼 논 우리는 햇볕에서 몸을 말리고 하만이 다음 장소로 우리를 안내했다. 또 버스를 타고 가면 오슈에서 제일 큰 이슬람 사원이 있단다. 오케이 하고 또 이슬람 사원을 갔다.
사실 걱정됐다. 이렇게 친절하게 우리를 구경시켜주고 가이드비를 달라고 하는 건 아닐까 하고. 대부분 여행지에서 그랬다. 이유 없는 친절은 잘 없었다. 자기 교통비를 써가며 이렇게까지 해주지는 않을 텐데 하고.
마지막으로 배가 고파져 맥도날드 짝퉁 같은 가게에 가서 햄버거를 먹었다. 맨날 라그만만 먹다 햄버거라니. 다들 허겁지겁 감자튀김 가루까지 다 핥아먹었다. 하만은 이제 약속이 있어 친구 만나러 가야 한단다. 그런데 가이드비라던지 수고비라던지 아무런 요구가 없다. 의심한 내가 미안해진다.
하만이 아니었으면 다들 숙소 근처에서 뱅글뱅글 돌아다니다 마지막 키르기즈스탄 여행이 끝났겠지.
이제 내일 아침 일찍 타지키스탄으로 출발. 키르기즈스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