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로 가는 기차
어느새 인도여행의 마지막 도시가 될 바라나시로 가게 되었다. 규화와 함께 뉴델리역으로 갔다. 한달 전 처음 뉴델리역에 갔을때는 보이지 않던 외국인 전용 창구가 2층에 바로 보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어 한 시간 반 정도 기다렸다. 인도에서 이정도 기다림은 아무것도 아니다. 거기다 인도에서 맛보기 힘든 빵빵한 에어컨까지 있어 우리의 기다림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표를 끊고 다시 호텔 빠얄로 가서 체크아웃을 하고 가방을 카운터에 내려놓고 다시 침대에서 이리 딩굴 저리 딩굴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호텔 빠얄은 최고다. 체크아웃을 하고 가방만 내려놓으면 다시 올라가서 침대에서 자도 되고 샤워도 해도 되고 안되는게 없다.
역시 인도다.
나랑 규화의 기차시간이 제일 빨랐다. 저녁 8시쯤 기차라 7시 좀 넘어서 나왔다. 그리고 아마 야스가 10시 좀 넘어서 라자스탄으로 갔을 것이고 마지막으로 륭법이가 새벽 2시 비행기로 요르단으로 날라갔겠지. 언제나 그렇듯 이별은 어색하다. 수많은 이별과 만남을 해왔지만 어쩔 수 없나 보다. 특히 같이 고생하며 여행한 이 각별한 정은 더더욱 그런 것 같다. 그래도 남은 여행 몸건강히 잘하라고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난 왜 기차를 탈때마다 1층만 걸릴까.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이 가장 애용하는 Sleeper칸에 올라타니 1층 침대칸에 인도인 가족이 쪼로롬 앉아있다. 내 티켓을 보여주며 여기 내자리니까 좀 비켜달라고 하니 거기 앉아 있는 인도인 아저씨가 갑자기 영어를 못하는 척 하며 힌두어로 뭐라뭐라 하더니 안 비켜준다. 열받아서 나는
“아저씨 티켓 보여줘요. 내 티켓 이거 D24 맞자나요. 이거봐요 아저씨 뒤에 D24라고 적혀있네요. 비켜요”
그래도 아저씨는 힌두어로 소리치며 막무가내로 안 비켜준다. 화가 났지만 일단 다른데 앉아서 가기로 했다. 마주보고 앉아있는 sleeper칸에는 아저씨와 그 가족으로 보이는 어린아이들 셋과 부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그리고 다른 아저씨 둘이 칸을 점령하고 발 밑에는 쌀포대와 각종 짐으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아저씨한테 더 소리칠 수 있었지만 아이들이 너무 귀여웠다. 귀엽다고 생각하는 순간 2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빼하고 울었는데 아주머니가 ‘울지마’하며 사정없이 뺨을 갈겨올린다. 그러더니 아이는 뚝 그친다. 무섭구나 인도 교육은.
드디어 티켓을 검사하는 역무원 아저씨가 칸칸마다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너무너무 반가웠다. 나는 아저씨한테 표를 보여주고 울상지으며
“아저씨, 저기 내 자린데 저 아저씨가 안 비켜줘요”
그러니 역무원 아저씨는 큰 소리로
“비켜줘요 비켜! 티켓을 보여줘요!”
그러자 아까 당당하게 자리를 안 비켜주던 그 아저씨는 장화신은 고양이 마냥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 두 손을 앞에 모으고 나한테 말한다.
“플리즈.....”
마음 약해진 나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럼 나중에 자는 시간 되면 비켜요. 누워 자야 하니까”
아저씨는 땡큐 땡큐 외치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고 다행히 아저씨는 순순히 비켜주셨다. 그리고 잘려고 하는데 다른 아저씨가 오더니 바닥에서 자도 되냐고 물어본다. 이건 또 뭐지 하고 생각하는데 화장실 가려고 한번 나갔더니 이해가 되었다. 복도에 온통 뭔가 깔고 누워자고 벽에 짐 놔두는 철봉으로 이루어진 짐칸에도 사람이 올라가 자고 있는 황당한 광경이 이어지고 있었다. 차라리 침대와 침대사이에 뭐라도 깔고 자는게 로얄석 인 듯 보였다. 그렇게 나는 1층에 자고 내 위로 2층에는 규화가 그리고 바닥에는 모르는 아저씨가 자면서 바라나시로 향했다.
새벽 3시쯤. 창문을 열고 잔 나는 추워서 잠깐 깨서 기지개를 펴는데 다리에 뭔가 있었다. 일어나 보니 내 침대에 어떤 인도인 남자가 같이 자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래서
“아 뭐야 이거! 꺼져!”
그 인도인 남자는 쏘리쏘리를 외치며 딴 곳으로 사라졌다. 놀랜 가슴을 진정하며 다시 잠들었다 5시쯤 짜이 파는 소년 소리에 깼더니 또 다른 남자와 나는 같이 자고 있었다.
“아 이건 또 뭐야 안꺼져?”
그 남자는 또 쏘리쏘리를 외치며 사라졌다.
잠이 확 깨서 짜이 한잔에 담배 하나를 피며 밝아오는 바라나시의 아침을 보았다. 만약에 덩치 큰 규화가 1층에 자고 있었다면, 그래도 인도인들이 침대로 올라왔을까. 하긴 나도 드레드 머리에 평범한 외모는 아니다.
그렇게 바라나시 도착. 인도 기차는 역시 다이나믹 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