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
골목골목 미로같이 생긴 이 도시. 물론 가트 밖으로 나가서 좀 걸어보면 큰 길가도 있고 갠지스강 건너에도 마을이 있지만 숙소밖으로 나가기 싫었다. 인도 여행 막바지여서 다 귀찮아져서 그런건지. 오랜만에 한국인들과 한국말로 얘기하고 떠드는 게 재미있어서 그런건지. 하루종일 규화랑 딩굴딩굴 거리며 놀다 카드게임도 하고. 배고프면 숙소 바로 앞 일본식당에서 대충 먹고 들어와서 또 누웠다 앉았다 좀 잤다가 더우면 샤워도 한 번 하고.
인도 여행이 다 그렇다. 아무것도 안 하기엔 인도 만한 나라가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빡빡한 일상속에서 벗어나 며칠이고 몇 달이고 아무것도 안하기 위해 이 곳을 찾는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여행 할 때 맛집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숙소 앞에 식당이 맛있으면 그 도시를 떠날 때까지 거기서 똑같은 메뉴만 먹기도 한다. 바라나시에서 먹은 음식들이 그랬던 것 같다. 그동안 아껴아껴서 여행하기도 했고 숙소 밖으로 멀리 나가기도 귀찮아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일본 식당에서 일본 음식만 먹었다. 거기다 맛있기까지 했다.
그리고 일본 카드 게임 다이후고.
이번 여행 하면서 일본 친구들과 다니면서 다이후고 게임을 천 번 이상은 한 것 같다. 특히 인도여행은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이 많고 버스나 기차 기다릴 때 제 때 차가 안오는 경우가 많아서 그럴때마다 땅바닥에 그냥 앉아서 카드 꺼내서 시간 때우고 놀았다. 이제는 왠만한 일본 친구보다는 잘한다. 여기 옴레스트하우스에서도 한국사람들한테 이 게임을 퍼뜨려 맨날 이거만 하고 놀았다.
하루종일 딩굴거리며 누워있는데 규화랑 숙소에서 만난 유종이가 오더니
“형 내일 새벽에 갠지스강 보트 투어 있는데 같이 가요. 갠지스강에서 해 뜨는 거 보는 거 멋있잖아요”
그래 뭐라도 하자 하고 오케이 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했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힘들었다. 간신히 눈 비비고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눈곱만 때고 나갔다. 아직 밖은 어두웠지만 갠지스강 가트로 가니 간신히 해가 떠오르려는지 저 멀리 희미한 빛이 보였다.
투어를 맡은 가이드는 인도인 철수. 한국에서 오래 살았고 한국인 상대로 가이드를 오랫동안 해와서 한국어가 너무 유창했다. 신기하기도 했고 정감이 간다. 어떻게 보면 정말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구나 하고 대단하기도 했다. 보트를 타고 천천히 강 중간으로 서서히 흘러들어 가기 시작했다.
강위에서 바라본 가트의 모습은 말로 표현이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한 단어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 몇 천 년 이상이나 이 성스러운 갠지스강은 인도인들의 옆을 지키며 함께 해왔구나. 그래서 구석구석 시꺼멓게 닳아있구나. 결코 지저분하지 않은 오히려 경이롭기까지 한 가트의 모습이다. 가트의 한켠에서는 인도인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빨래를 하고 목욕도 하고 있고 다른 한켠엔 화장터에 나무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쌓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렇게 슬프게 아름다운 이 갠지스강과 가트의 모습뒤로 해가 뜨기 시작하고 어두운 이 곳이 밝게 빛나며 제 색깔을 찾기 시작했다. 보트위의 우리 모두는 숙연해졌다. 동영상을 열심히 찍는 사람도 있고 인증샷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이 순간을 닮고 싶어 열심히 카메라를 눌렀지만 강 위의 이 공기와 인도인의 삶 그리고 이 냄새를 네모난 내 조그만 카메라에 담기는 힘들었다.
그렇게 한시간 동안의 평생 잊지 못할 투어를 끝내고 다시 바라나시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시 딩굴딩굴 이리 딩굴 저리 딩굴
내일은 뭐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