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이리 딩굴 저리 딩굴 하며 바라나시의 일상은 지나가고 있었다.
종교적으로 힌두교라서 그런지. 밤에는 모든 술집이 다 문을 닫아서 그런지. 인도는 다른 여행지보다 술 구하기가 어렵다. 갠지스강이 눈 앞에 쫙 펼쳐지는 옥상에 올라가면 맥주 한모금이 간절했지만 애꿎은 담배만 뻐끔뻐끔 피우다 내려오곤 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는 스태프에게 부탁하고 조금의 심부름값만 주면 술을 사온다고 하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이틀 삼일이 가고 또 다시 규화와 유종이가 와서
“형 이 근처에 사라나트라고 불교 사원이 있다는데 한 번 안 가볼래요?”
진짜 아무것도 정말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숙소에서 딩굴딩굴만 했지만 그거 가는 것도 귀찮아서 망설였지만 동생들의 설득 끝에 바람 한번 쐬러 나가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간단히 아침을 먹고 릭샤를 타고 갔다. 릭샤 하나에 우리 모두가 타기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억지로 몸을 구겨 넣고 차에 올라탔다. 덩치가 큰 동생들이라 걱정했지만 그래도 릭샤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참 신기하기도 하다. 사실 지금은 인도의 국교가 힌두교이긴 하지만 불교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부모님이 독실한 불교 신자니 내가 대신 한번 갔다오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한 두시간 갔다.
온통 힌두식 건물에 힌두식 옷을 입고 다니는 인도에 불교 사원이 눈 앞에 나타나니 신기했다. 우연히 태극기가 벽에 붙어 있는 절도 찾았다. 안타깝게 한국 스님은 수행을 가셨단다. 그래도 뭔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한글로 쓰여져 있는 좋은 말들이 우리를 반성하게 하기도 했다.
그렇게 짧지만 길었던 불교 사원 투어를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어느덧 인도에서의 여행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타지키스탄에서 부랴부랴 인도로 날아오느라 한 달 비자 밖에 못 받았었던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내일이면 바라나시에서 기차를 타고 콜카타로 들어가 거기서 바로 비행기를 타고 태국으로 날아가야했다.
여행사로 가서 콜카타행 기차표를 끊고 오늘은 마지막 날이니까 쇼핑도 좀 하고 가트도 좀 돌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숙소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서 쉬고 있으니 일본인 친구 류상이 온다.
“바라나시에서 엄청나게 유명한 방라씨라고 있어. 그거 장난아니야. 마시러 가자”
동생들을 데리고 류상과 함께 골목골목을 걸어 방라씨 가게에 도착했다. 그때가 낮 12시쯤.
“너는 체력이 좋아보이니까 스트롱을 마셔. 난 그거보다 한 단계 위인 마하라자를 마실테니깐”
그렇게 하기로 하고 주문을 했다. 그러고 나니 류상은
“이걸 얼른 원샷 하고 숙소로 빨리 돌아가야해”
시키는 대로 라씨를 받자마자 원샷을 하고 서둘러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 도착하니 1시쯤 되었다. 갑자기 천장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더니 규화와 함께 도미토리 방에 누워서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두시간 동안 갈비뼈가 나갈 듯이 웃고 지쳐서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새벽 1시.
바라나시의 마지막 날이 그렇게 통째로 날라가 버렸다. 망했다. 그렇게 아침이 밝아오고 아직 힘이 없어서 기어서 방 밖으로 나가서 일단 체크아웃을 하고 부랴부랴 동생들이랑 급히 쇼핑을 했다. 가게 하나에 들어가서 미친 듯이 옷이랑 스카프를 샀다. 남자들의 쇼핑이란. 그냥 보고 마음에 들면 사면 되는 것이다.
다행히 저녁 기차라 좀 쉬다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정말 발이 안떨어진다. 내 여행 동안 이렇게 태국으로 가기 싫은 적이 처음이었다. 동생들과 친구들을 숙소에 남겨두고 혼자 가방을 메고 터벅터벅 나오는 기분. 참 묘하다. 이렇게 떠나기가 싫다니. 인도의 매력에 이미 빠져서 허우적허우적 거리는 나를 발견했다. 릭샤를 잡아타고 기차역에 도착해서 기차안으로 들어왔다. 역시 나는 사람 운은 있다. 가는 동안 심심하지 않게 바로 옆에 홍콩인 여행자 닉이 있었다. 이것저것 인도에서 있었던 다이나믹 했던 이야기들을 서로 주고 받다 밤이 어두워져서 잠이 들었다.
아침 9시쯤 콜카타 역에 도착해서 거기서 바로 공항 셔틀 버스를 잡아타고 공항으로 갔다. 내 비행기는 밤 9시 반 닉 비행기는 8시 반. 콜카타 공항은 비행시간 3시간 전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뭐 이런 공항이 다있나 싶었지만 인도는 노숙자도 많고 날씨가 더워서 빵빵한 에어컨이 있는 공항으로 사람들이 다 모여들면 정말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겠다 싶기도 했다.
닉과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공항 밖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인생얘기 가족 얘기 등 할 수 있는 모든 얘기는 다 한 것 같다. 가방에서 카드를 꺼내서 홍콩 게임도 배우고 한국게임과 일본 게임도 가르쳐 주고 배고프면 근처 식당에서 밥도 먹고 하며 열심히 기다렸다. 그러다 5시쯤 되니 이제 공항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공항 안은 공항 밖과 너무 달랐다. 너무 추워서 가방안에서 가장 두꺼운 옷을 꺼내입었다.
그렇게 닉과 작별 인사를 하고 나도 태국행 비행기를 타려고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했더니 에어인디고는 비행기표를 결제한 사람과 탑승객 이름이 다르면 탑승 할 수 없단다. 사실 신용카드를 안들고 여행해서 규화가 카드로 대신 표를 끊어주고 규화에게 내가 현금으로 지불했었다.
이제 2시간 후에 내 인도 비자는 끝나서 오늘 꼭 가야하는데 이건 무슨 소리인가.
“분명히 표를 결제하기 전에 에어인디고에 전화해서 친구가 카드로 비행기표를 결제 해주고 내가 탈 꺼라고 했더니 ‘노 쁘라블럼’ 이라고 했어요. 갑자기 이러면 어떻해요. 저 이제 인도비자 오늘까지 끝나고 내일은 여기 못있어요”
이런 노 쁘라블럼 인디아. 끝까지 이런다.
결국 결제 창구에서 비행기표를 새로 다시 사서 간신히 인도를 뜬다.
그리울 것 같다. 노 쁘라블럼 인디아. 다시 꼭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