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가까이 여행하고 3년 전 한국에 돌아왔을때 다음 여행에는 꼭 부족했던 걸 다 준비해서 가리라 했었다.
첫번째로 라식을 해서 가야지 했었다. 안경을 끼고 있으면 흐르는 땀 때문에 높지 않은 내 코에 안경이 걸쳐졌었다. 그렇다고 렌즈를 끼고 있으면 장기 이동을 하는 버스나 기차를 탈 때 눈을 좀 붙이려고 하는데 렌즈를 끼고 뺄 때 여간 귀찮은게 아니었다. 손을 씻지 못하는 상황이 많아 먼지 투성이인 손가락으로 내 눈을 괴롭히며 렌즈를 울며 끼고 빼고 했었다. 여행 막바지엔 렌즈만 끼면 눈이 빨개지는 결막염까지 걸렸었다.
두번째로 노트북을 새로 사가야지 했었다. 오래된 노트북이긴 했지만 쓸만해서 들고 다니긴 했는데 노트북 무게만 4.5키로에 덩치도 컸었다. 배낭에 이 노트북을 넣고 거기에 옷가지 몇 개만 더 채워 넣으면 10키로가 훌쩍 넘었으니 노트북 빼고는 들어 있는 것이 별로 없었지만 짐을 아무리 훌륭하게 싸도 항상 무거웠었다.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좋은 거 하나 사가야지 했었다. 여행을 끝나고 남는 건 정말 사진 밖에 없었다. 여행을 하면서 일기나 블로그로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며 사라져간다. 그나마 사진은 그 때의 기억을 아주 생생하게 기록하진 않지만 그 때의 기분이나 향기를 느끼기게 충분했다. 그 때의 내 카메라는 지금의 폰 카메라보다 조금 더 좋은 수준이었다. 좀 더 좋은 사진들이 있었으면 그리고 좀 더 사진을 많이 찍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았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예전에 캄보디아에서 만나 같이 여행하면서 내 사진을 찍어줬던 형이 있었다. 인물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그 형은 내가 모델이 괜찮다며 꽤 멋진 사진들을 찍어줬었다. 그러나 내가 나온 사진을 달라고 하면 주지 않았었다.
“안돼. 이건 아무나 주는 거 아니야”
그러면 나를 왜 찍었을까. 그때부터 다음 여행엔 나도 괜찮은 카메라를 꼭 사오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그 여행 후 열심히 일하면서 보낸 3년은 이것들을 준비하기에 충분하고도 넘치는 시간이었다. 이제 라식을 해서 안경없이도 뚜렷하게 보인다. 안경집이나 렌즈통, 렌즈액을 안가지고 다녀도 되서 배낭 짐도 줄일 수 있다. 노트북은 요즘 유행하는 1키로도 안되는 초경량으로 하나 샀다. 카메라도 무거운 DSLR보다는 가벼우면서도 실용적인 미러리스 카메라로 하나 샀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에 대한 갈증이 최고조에 달해 있어 마음가짐까지 모든 준비가 완벽했다.
완벽하게 떠난 여행이었지만 지금까지 간 모든 여행중에 가장 우여곡절이 많은 여행이었다.
남미로 갈 생각이었지만 남미는 커녕 그 근처도 못가고 동남아와 서남아를 가게 되었고 폰은 여행 시작하기도 전 인천공항으로 가는 공항철도에서 잃어버렸다. 라오스에서는 카약킹을 하는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우가 내렸고 캄보디아에서는 베드벅 비슷한 벌레에 30방 넘게 물려 고생했다. 스리랑카에서는 카메라 렌즈가 망가져 비싼 돈주고 수리했고 몰디브에서는 아예 수중 카메라 액션캠이 박살나버렸다. 네팔에 도착은 했는데 몰디브에서 부친 수화물이 5일동안 오지 않아 같은 속옷과 옷을 입고 버텼고 마지막으로 태국에서는 폰을 또 잃어버려 지금까지 여행하며 찍은 모든 사진들을 날려버렸다.
그래도 남미로 갔었으면 못 만났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라오스에서 물축제 피마이를 즐기고 캄보디아에서 미친듯이 놀았다. 스리랑카에서 바다거북이와 함께 서핑을 했고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잔도 했다. 네팔에서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히말라야에서 번지점핑하기에 성공했고 다시 돌아온 태국에서 달콤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카메라보다 폰으로 더 사진을 많이 찍은 여행이었다. 그래서 사진이 많이 안남았다. 지금 생각해도 속이 쓰리지만 그만큼 많은 추억과 에피소드를 남긴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