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바라고 바랬던 여행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휴식이 필요해 잘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남미 여행을 계획하고 출국 날이었다. 미국을 경유해 멕시코 칸쿤으로 들어가는 비행기는 오후 5시. 홍대에서 부푼 마음으로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장기간 비행기라 밧데리를 아끼기 위해 폰도 꺼뒀다. 인천공항에 내려서 폰을 키려고 보니 주머니에 폰이 없다. 지하철에서 주머니에 있던 폰이 빠졌나보다. 사색이 되어 분실물 신고 센터에 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연락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비행기 시간이 있으니 일단은 체크인을 해 놓았다. 수화물로 배낭도 부쳤다.
‘에이 설마. 찾을 수 있겠지’
하고 기다려도 연락이 없어 다시 분실물 신고 센터에 전화를 해도 분실물로 들어온 폰은 없다고 한다.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게이트를 지나 짐 검사와 입국 심사를 마치고 들어갔다. 입국 심사는 이제 간단해져 기계에 지문찍고 여권 스캔만 하면 그냥 지나간다. 5분도 안걸린다. 해외에 나갈때마다 수상하게 생긴 내 외모 때문에 항상 나만 따로 짐검사를 했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무작위로 짐검사를 하는거라 죄송하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깔끔하지 않은 내 외모 때문인 것 같았다. 이번에는 신기하게도 금방 통과했다.
비행기 시간이 가까워 온다. 셔틀 트레인을 타고 출국 게이트로 가야겠다. 아직 폰을 찾았다는 연락은 없고 트레인이 다가온다.
‘이거만 타면 정말 끝이다. 폰 없이 멕시코로 날아가야 한다. 그리고 두달을 거기서 폰 없이 살아야한다. ‘
이런 생각을 하며 트레인이 다가오는 2분 남짓동안 혼자 영화를 찍었다. 사실 폰 없이 여행을 할 수 있긴 하지만 가족들과 연락도 안되고 한국에 돌아온 다음 다시 돌아갈 직장을 알아 봐도 폰이 없으면 연락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도저히 찝찝해 그냥 셔틀을 안타고 뒤돌아 다시 나가기로 했다. 당일 취소라 100만원이 넘는 비행기표도 그냥 버리기로 했다.
다시 타고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 올라갔다. 출국 심사장으로 가서 비행기 안탄다고 내보내 달라고 하니 안된다고 역심사를 받아야 나갈수 있단다.
‘역심사는 또 뭐지?’
안내데스크로 가서 항공사 직원이랑 얘기하고 서류작성해서 다시 오란다. 한국을 나갈때는 쉽지만 다시 들어오기는 쉽지 않다. 이상하다. 나는 분명 한국인인데.
안내데스크에 상황을 설명하고 비행기를 안타고 싶다고 하고 20분 정도 기다렸다. 기다리는동안 앞에 면세점이 보인다.
‘비행기도 못 타는데 여기까지 들어온 김에 면세점에서 담배나 한보루 사서 들어갈까’
고민하고 있는데 항공사 직원이 온다. 일단 다시 밖으로 나갈 서류를 작성하고 출국심사장으로 들어가 또 다시 짐 검사하고 또 서류 작성하고 이미 실어버린 내 배낭도 다시 빼서 검사하고 또 다시 서류 작성을 한다. 서류 작성하는데 입국심사 직원이 묻는다.
“혹시 면세점에서 뭐 사신거 있으세요?”
없다고 하니 오케이 하고 밖으로 보내준다. 담배 샀으면 훨씬 시간이 더 걸릴뻔했다. 그리고 밖에서 또 20분 기다리니 다른 직원이 내 배낭을 가지고 나온다. 입국심사는 10분도 안걸리는데 다시 나오는 역심사는 한시간 반이 걸린다.
그렇게 다시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그리고 또 다시 공항 철도를 타고 혼자 홍대로 오는 길이 너무 슬프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곳인데. 그렇게 설레고 나름 스페인어도 공부하고 남미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꽤 알아봤었는데 정말 말도 안되는 이유 때문에 집으로 간다. 말도 안되게 폰을 잃어버리고 돈도 한순간에 날아갔다. 옛날엔 폰도 없이 노트북도 없이 몇 달동안 잘 여행했었는데. 나이가 들어 겁이 많이 진건지. 아니면 내가 소위 말하는 스마트폰 중독인건지. 모르겠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멕시코 가서 더 심한 사고가 나거나 더 큰 물건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지. 이건 눈에 보이지 않지만 거대한 뭔가가 나를 막은거다. 가지 말라고. 가면 절대 안된다고.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허무하게 비행기를 떠나보낼 수가 없다.
그나저나 몇 시간만에 날아간 내 비행기값 120만원은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