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티엔
역시나 기차는 안락했다. 예전에 탔던 것과 똑같이 1층은 일반 의자였다가 밤이 되면 침대로 변신한다. 내 자리는 2층이었다. 예전에도 2층에 잤었는데 에어컨이 2층에 있어서 너무 추웠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머리 바로 옆이 천장이라 불이 켜지면 눈이 부셔서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모든 걸 준비해왔다.
춥지 않게 긴팔과 침낭을 가져왔다. 눈 부시지 않게 안대도 가져왔다. 완벽하다. 침대에 올라가 커튼을 치고 편하게 누워 잠이 올때까지 다운로드 받아간 미드를 보다가 침낭속에 쏙 들어가 안대를 하고 잠이 들었다. 한번도 안깨고 정말 푸욱 잤다. 잠에서 깨어나니 이제 도착시간까지 한시간 정도 남았다. 정말 편안하고 지루하지 않게 11시간 장기 기차여행이 끝났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참아왔던 담배를 하나 피고 있으니 역시나 국경까지 가자는 툭툭 기사들이 몰려온다. 한사람당 40밧 하는 걸 30밧 정도까지만 깎아서 태국 국경까지 갔다.
국경을 가볍게 통과하니 태국 국경에서 다리를 건너 라오스 국경까지 가는 셔틀 버스가 있다. 이건 흥정의 여지없이 그냥 20밧이다. 그리고 라오스 국경도 통과하니 또 툭툭 기사들과 택시기사들이 몰려든다.
“어디가요? 버스정류장? 시티센터?”
센터로 간다고 하니 한 사람당 300밧을 부른다. 너무 비싸서 어이없어 그냥 담배나 하나 피고 있으니 계속 기사들이 온다. 사실 나도 정확한 정가를 모른다. 그냥 300밧(만원정도)이 비싸 보였다. 관심없이 담배만 피고 있으니 자기네들끼리 200밧까지 깎는다. 그래서 나는 그냥 한번 외쳐봤다.
“50밧!”
기사들은 어이없어 하며 사라진다. 그리고 또 다른 기사들이 와도 계속 50밧에 가자고 억지를 부리니 300밧에서 어느새 80밧까지 깎였다. 그래도 가만히 있으니 저 멀리서 우리를 보고 있던 어떤 택시기사 할아버지가
“저기 보이는 버스타면 20밧이야. 근데 시티센터로는 안가고 모닝마켓으로 갈꺼야”
이거다. 일단 여기를 벗어나 아무데나 내려서 다시 툭툭을 타도 100밧은 안나오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일단 버스에 올라탔다. 예상대로 외국인은 나밖에 없다. 신기한듯 사람들이 끊임없이 쳐다본다. 그리고 버스는 출발한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가다가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데서 내려야겠다. 그렇게 40분쯤 가니 사람들이 내린다. 여기가 그 시장인가보다. 나도 따라 내려 툭툭을 잡아타고 예전에 비엔티엔에 왔을 때 묵었던 니니게스트하우스로 갔다.
역시나 주인 아주머니는 나를 기억했다. 얼마나 비엔티엔에 머물꺼냐는 말에 오늘밤에 팍세로 가고 싶은데 티켓 예약을 할 수 있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그럼 티켓 끊고 버스시간까지 여기서 쉬다 가도 돼. 와이파이도 쓰고 샤워도 하고 싶으면 해. 체크인은 굳이 안해도 돼”
역시 라오스의 인심이란. 버스 시간은 오후 6시. 지금 여기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7시간을 버텨야한다. 일단 출출해서 먹고 싶었던 도가니 국수를 먹고 라오스 돈을 환전해서 돌아왔다. 그래봤자 12시.
6시간 동안 숙소 앞 테라스에 앉아서 사람들이랑 이야기도 하고 맥주도 한잔하면서 보내기로 했다. 테라스에 앉아 있던 한 서양인 남자가 인사한다.
“아까 주인 아주머니랑 이야기하는거 들었는데 너도 팍세가? 나도 오늘 팍세로 가. 같이 가겠네?”
이 친구는 영국인 매트. 한국에서 영어강사를 7년하고 지금 한국인 여자애랑 같이 여행중이란다. 혼자 갈 줄 알았는데 친구가 생겼다. 공짜로 테라스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건 좋은데 너무 덥다. 온도를 보니 37도다. 온몸에 있는 노폐물이 다 튀어나올만큼의 땀을 하루 종일 흘리고 물도 엄청난 양을 마셨다. 앉아 있으니 여러 친구들이 모인다. 영국, 한국,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그리고 이스라엘까지. 얘기하고 놀다 밥 먹고 또 얘기하다 보니 드디어 6시.
픽업 툭툭이 오고 버스터미널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가장 크고 좋아보이는 버스가 우리 버스다. 근데 버스안을 보니 조그마한 1인용 침대에 베개랑 이불이 두개씩 놓여져 있다. 설마 저 조그만 침대에 두 명이 자는 건 아니겠지. 뭔가 불안한 예감이 엄습해 온다.
불안한 예감은 어떻게 이렇게 잘 들어맞는지. 같이 온 영국친구 매트는 한국여자애 지원이랑 같이 표를 끊어서 같이 침대를 쓰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딱히 종교는 없지만 신에게 빌기 시작했다.
‘제발 덩치크고 냄새나는 서양인만 아니길!’
버스에 올라타라는 말이 떨어지고 매트와 지원이는 웃으며 ‘굿 럭’ 하고 앞자리로 간다. 나는 혼자 작은 침대에 앉아서 누가 올지 초조하게 기다리기 시작했다. 제발제발 하고 속으로 혼잣말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버스가 출발한다.
‘응? 나만 혼자 쓰는 거야?’
내 자리 빼고는 다 두명이서 자리를 쓰고 있다. 베개 두개가 나란히 놓여지지도 않아 반쯤은 포개서 자야하는 작은 공간에 다들 두명씩 쓰고 있는 것이다. 다른 여행자들이 부러움의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역시 나는 럭키가이.
그리고 내 네번째 라오스 여행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