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세
슬프게도 나는 럭키가이가 아니었다. 혼자 침대 쓴다고 좋아하면서 편하게 누워 가는데 1시간 좀 넘게 가서 버스가 또 멈춘다. 그리고 사람이 더 탄다. 설마설마 했지만 불길한 예감은 어찌나 딱 들어맞던지. 서양 남자애가 내 옆으로 온다. 다행히 덩치는 나만하다. 서로 머쓱하게 ‘하이’ 하고 인사하고 이 친구는 내 옆자리에 주섬주섬 짐을 내려 놓고 이불 속으로 쓰윽 들어간다. 몸을 조금만 움직이도 몸이 닿아 서로 움찔움찔하며 밤새 자다깼다 자다깼다하며 어색하게 12시간 정도를 달린다. 거기다 정면으로 누우면 서로 팔이 닿고 반대쪽으로 누우면 이 친구 얼굴이 바로 보여서 서로 등을 맞대로 자려고 노력했다. 입장바꿔서 생각하면 이 친구도 얼마나 황당했을까. 분명히 자리 번호가 적혀 있는 티켓을 보고 버스에 탔는데 지저분한 드레드 머리에 왠 동양인 남자가 자리에 누워있다.
‘오 마이갓! 얘랑 같이 자면서 12시간이나 가야하는거야?’
하고 속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버스는 밤새 달리고 달려 아침 8시쯤 팍세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가봤던 다른 여행지의 버스정류장과는 다르게 강가에 위치해 있다. 도착하자마자 이미 경치는 아름답다.
일단 나나 매트나 지원이나 아무 정보도 계획도 없이 온거라 일단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 마시며 와이파이로 숙소 정보를 좀 찾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찾은 게스트하우스 2개. 낭노이 게스트하우스랑 캠쌔이 게스트하우스. 먼저 가까운 낭노이로 가봤다. 깨끗한 방에 4인실 도미토리방인데 우리 셋이서 쓰면 딱인듯 보인다. 개인 테라스도 있다. 다른 게스트하우스도 보고 싶었지만 여기서 좀 멀기도 하고 다들 피곤해서 일단 여기에 하루 묵기로 했다.
돌아가며 참아왔던 샤워를 하고 출출해서 밥을 먹으러 나갔다. 딱히 땡기는 식당이 없어 좀 걸을까 했는데 지원이가 배가 너무 고프단다. 그래서 만만한 로컬 식당에 자리잡고 앉아 아무거나 사진에 맛있어 보이는 걸로 똑같이 3개 시켰다. 역시나 그림과 아주 다른 선지국수 같은게 나온다. 분명히 그림은 볶음 고기국수 같았는데. 그래도 배고픈 우리는 맛있게 먹었다. 이제 배부른 우리는 좀 걷기로 했다.
아침에 도착했을땐 잘 몰랐는데 아기자기한 색색의 건물들과 파란하늘이 조화된 예쁜 도시다. 생각보다 좋은 이 도시를 땀을 뻘뻘 흘리며 걷다 강가로 가보기로 했다. 강가로 걸어가니 아까 찾아봤던 숙소 두 곳 중 다른 한 곳 캠쌔이 게스트하우스가 강 바로 옆에 있다. 구경도 할 겸 들어가자마자 우린 후회했다.
‘아 여기서 머물걸’
강 바로 옆에 테이블과 해먹이 놓여있다. 사람을 잘 따라는 애교 많은 고양이도 우리를 반긴다.
어쩔수 없지 하고 여기에 머물진 않지만 강가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시켰다. 너무 여유로운 분위기인 여기서 얘기를 하고 또 하고 맥주도 시키고 또 시키고 3병씩쯤 마시고 너무 더워 열이 올라 다시 숙소로 돌아가 좀 쉬다 출출해져 다시 밥을 먹으러 나왔다. 나는 계획과 정보가 없어도 인터넷으로 찾고 잘 찾지 않지만 이 두 사람은 식당 검색, 숙소 검색 거기다 내가 제일 못하는 지도보고 길 찾기도 한다. 나는 그저 따라 다닌다.
매트가 인터넷에서 찾은 인도 음식점을 가봤다. 여긴 셋 다 다른 메뉴를 시켰는데 다 너무 맛있다. 인도에서 먹은 웬만한 음식보다 맛있다. 사실 전 세계 어딜 가도 인도음식은 인도보다 다른 나라가 더 맛있는 것 같긴 하다. 밥먹고 또 숙소에서 늘어지다 지원이가 바에 가서 술이나 한잔 더 하자고 한다. 그래서 다시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꽤 유명한 바로 가서 자리 잡고 앉았지만 우리말고 아무도 없다. 다른 여행자들과 이야기 하며 놀고 싶은 우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아 걸어다녀 봤다. 이 도시는 정말 여행자가 없나보다. 여기 머물지 않고 바로 다른 유명한 곳으로 가나보다. 걷고 또 걷다 아까 갔던 강가에 게스트하우스로 또 가보기로 했다.
거기에 가보니 프랑스 커플이 맥주 한잔하고 있다. 우리도 잠깐 앉아 맥주 한잔하기로 했다. 이 커플은 직장에서 9개월동안 휴가를 줘서 같이 여행중이란다. 그리고 한번씩 직장상사에게 전화와서
“여행 잘 하고 있지? 푹 쉬고 다시 회사로 돌아와야해”
라는 말을 한다며 휴가 중에 전화오는게 싫다며 웃는다. 그리고 다시 가서 일해서 또 휴가 받아서 같이 여행 할거란다. 같이 여행하는 매트도 한국에서 일하던 학원에서 한번씩 3개월 휴가를 줘서 영국집에도 갔다오고 여행도 했단다. 우리나라는 왜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이렇게 길게 여행하는 것은 절대 꿈도 꾸지 못하고 대부분이 살아간다.
9개월 휴가를 받고 또 일하고 다시 휴가 받아야지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나하면 9일 휴가를 받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노력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생각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