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세
오랜만에 잠을 아주 푹 자고 일어났다. 모닝 닭 소리는 벌써 익숙해진 듯하다. 새벽에 닭소리에 깜짝 놀라서 잠깐 깼지만 바로 다시 잠들었다. 오늘은 시판돈으로 가는 날이다. 라오스어로 시판은 4000. 돈은 섬이라는 뜻이다. 메콩강 위에 400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다시 팍세에 있는 남부터미널로 갔다가 거기서 툭툭을 잡고 타고 팍세 시내로 가 다시 또 버스나 미니벤을 타고 시판돈으로 가야한다. 긴 여정이 될 것 같다. 오늘도 내가 제일 먼저 눈을 떠 밖으로 나가니 네덜란드 친구 쿽이 테이블에 앉아 있다. 과일 샐러드와 커피를 시켜 쿽과 얘기 좀 하고 앉아 있으니 매트와 지원이가 나온다. 다 같이 모닝 커피를 한잔씩 하고 각자 짐을 챙겨서 나왔다.
사실 탓로에 있으면서 캡틴 후크라는 곳을 가보고 싶었다. 만나는 서양친구들마다 캡틴 후크는 꼭 가봐야 한다며 강력하게 추천했었다. 탓로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간 시골마을에 아직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소수 민족들이 살고 있단다. 그만큼 문명이 있는 외지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곳이다. 거기서 캡튼 후크라는 별명을 가진 이 사람이 태국 방콕에서 학교도 다니고 교육도 받아서 이 시골에서 교육도 하고 관광객들 안내도 도와주고 있다고 한다. 캡틴 후크에 가면 여기 소수 민족들과 하루동안 홈스테이를 하며 그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단다. 거기서 하루 머물려다 그냥 시판돈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여기에서 더 시골마을로 가는 길이 너무 멀고 험할 것 같다. 그리고 또 다시 나와야 할 것을 생각하니 다음 여행지로 바로 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10시에 탓로 시장 앞에서 팍세로 간다는 버스가 있다는 정보에 9시 반쯤 툭툭을 타고 9시 45분쯤 시장에 도착했다. 오늘도 역시 미친듯이 덥다. 죽어라 햇빛이 내려쬔다. 그리고 역시나 10시가 되도 버스는 올 생각이 없나보다. 땀을 몸에서 토해내듯 쏟아내며 시장에서 나오는 라오스 특유의 신나는 로컬 노래를 들으며 버스를 기다렸다. 10시에 버스가 온다고 했으니 11시면 오겠지 하고 마음을 비우고 그냥 땅바닥에 앉아 카드 게임이나 했다.
몇판하고 있으니 11시가 좀 넘어 버스가 드디어 온다. 버스에 올라타 창문을 최대한 열고 바람을 맞으며 열을 좀 식혔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 피곤했는지 바로 골아떨어졌다. 팍세에서 여기로 올떄는 3시간쯤 걸렸는데 다시 여기서 팍세로 갈때는 차가 안 밀리는지 2시간 좀 넘게 걸린다.
남부 터미널에 도착하니 툭툭기사들이 버스로 몰려온다. 시판돈 가려고 시티센터로 간다고 하니 한 사람당 7만낍을 부른다. 우리는 표정이 싹 굳으며 시티센터에서 여기올때는 한 사람당 만낍에 왔다고 하니 바로 오케이 하고 타란다. 뭐지. 그냥 우릴 한번 떠 본건가. 사실 우리는 여기 올 때 한 사람당 만 오천낍에 왔다. 그냥 던져본 말에 바로 오케이라니. 원래 정가는 도대체 얼마인거지.
남부터미널에서 시티센터까지는 8키로정도. 10분정도 만에 도착해 처음 팍세에 왔을 때 내렸던 강가에 조그만 버스터미널로 갔다. 충격적이다. 시판돈으로 가는 버스는 매일 아침 8시에 딱 한대란다. 그리고 아까 8키로 떨어진 남부터미널에 시판돈으로 가는 버스가 있을 수도 있단다. 고민에 빠졌다. 다시 툭툭을 타고 남부 터미널에 가볼것인가. 그런데 다시 갔는데 또 버스가 없으면 어떻하지하고 고민하다 너무 덥고 지쳐서 여기 팍세에서 하루 더 머물고 내일 시판돈으로 가기로 했다.
포기하면 편하다. 전에 갔던 인도 식당으로 가서 일단 밥을 먹고 전에 강가에 앉아 맥주 마셨던 캠쌔이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을 했다. 그리고 바로 시원한 맥주를 시켰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매트와 지원이는 더블룸에 체크인하고 나는 혼자 싱글룸을 잡았다. 이 친구들 방은 괜찮다는데 내 방만 너무 덥다. 그래도 어쩔수 없다. 싸니까.
샤워를 해도 너무 더워 그냥 강가 테이블에 앉아 맥주 한잔하며 시간을 보냈다. 너무 더워서 숙소 밖으로 나가기 싫다. 날이 어두워지고 좀 시원해져 밥을 먹으러 잠깐 밖으로 나갔다 다시 들어왔다.
내일은 꼭 시판돈으로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