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판돈
자다가 천둥소리에 깼다. 천장을 때리는 물소리가 잠을 못 잘 정도로 시끄럽다. 방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가보니 비가 앞이 안보이게 쏟아진다. 오늘 분명 카약킹을 하러 가야하는데 이렇게 비가 오면 못 갈 것 같다. 예전에 방비엥에서 비 온 다음날 카약킹을 해봤는데 강에 물이 불어나있고 물살이 너무 빨랐다. 사실 어제 지금까지 여행하는동안 너무 더워서 비가 좀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말이 씨가 됐다. 그런데 왜 하필 오늘일까.
비를 보며 멍하게 앉아있는데 매트가 일어나 나온다.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과연 카약킹을 할 수 있을까?”
매트랑 지원이랑 라우라랑 넷이서 얘기를 하면 할수록 지금 카약킹을 하는 건 말이 안된다는 말 밖에 안나온다. 얘기하는 동안에도 비는 그칠 생각을 안한다. 일정 취소가 안되더라도 이런 날씨에 카약킹을 한다는 자체가 너무 위험한 것 같아 안하고 싶었지만 과연 오늘 집합장소로 가서 안하고 싶다고 말하면 환불을 해줄까.
일단은 비를 맞으며 걸어서 집합장소에 도착했다. 레스토랑 주인 아저씨가 말한다.
“비는 좀 있다 그칠꺼고 뜨거운 햇빛 아래서 카약킹해서 화상입는거보다 오히려 이런 날씨가 카약킹하기에 좋아. 그리고 위험하지도 않아. 걱정마”
혹시 안하면 환불할수 있냐는 말에 이미 사람수대로 다 준비해놔서 그건 안된단다. 그래서 돈도 아깝고 그냥 하기로 했다. 나는 당연히 취소될 줄 알고 수중 카메라도 안가져오고 카메라도 그냥 숙소에 놔두고 왔고고 여권이랑 신용카드만 그냥 주머니에 넣고 왔다. 카약킹을 할 거 였으면 지금 가지고 온 것과 놔두고 온 것이 반대여야했다. 카약킹에 필요한건 안가지고 오고 필요없는 것만 다 가지고 왔다.
카약킹에 포함된 조식을 먹으며 픽업을 기다렸다. 어제 강가에서 만난 유럽 친구들이 식당에 도착하고 식당 바로 옆에 있는 카약이 있는 장소로 내려갔다. 아직 비는 그치지 않는다. 걱정반 기대반으로 귀중품을 방수팩에 다 집어넣고 카약에 올라타 노를 젓기 시작했다. 4년만에 하는 카약킹이라 조금 긴장했는데 첫번째 코스는 생각보다 무난했다. 비도 계속 내려 온몸이 흠뻑 젖어 땀도 거의 안 흘린 것 같다. 햇빛도 없어 눈도 부시지 않았다. 아저씨 말대로 이런 날씨가 좋은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30분 정도 노를 저어 첫번째 포인트에 도착했다.
카약에서 내려 걸어서 폭포로 갔다. 비가 계속와 바닥이 진흙탕이라 조리로 걸어다니니 진득진득 흙이 달라붙고 오른쪽 조리는 아예 끈이 빠져버렸다. 그래서 차라리 조리를 손에 들고 맨발로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발바닥에 작은 돌맹이랑 나뭇가지를 밟으며 산을 타니 죽을 맛이다. 어쩔 수 없다. 여기서 느낀다. 다음 여행에는 꼭 조리대신 크록스를 신고 와야지.
폭포를 구경하고 작은 웅덩이에서 잠깐 수영하다 두번째 코스로 간다. 두번째 코스는 중간중간에 암초랑 작은 섬들이 많아 힘들거란다. 그래도 출발. 난 초보지만 다행히 가이드랑 같이 타서 배가 뒤집어 지지는 않았다. 뒤집어 지는건 상관없지만 혹시나 방수팩 안에 있는 내 모든 귀중품들이 젖을까 불안했다. 다른배를 같이 한조가 되어 탄 매트와 라우라는 한번 뒤집어졌다. 그리고 방수팩에 조그만 구멍이 있었는지 안에 있는 물건들이 조금 젖었다. 폰에도 물이 들어갔지만 다행히 작동하는데는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어려운 코스를 지나고 나니 바다같이 탁 트인 강 하구가 나온다. 강 맞은편에 보이는 곳은 캄보디아란다. 라오스와 캄보디아 사이 한 가운데 떠 있는 섬에서 잠깐 쉬면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메뉴는 가이드가 직접해주는 볶음밥과 바비큐. 하루종일 비맞으며 노를 젓고 먹는 점심은 꿀맛이었다. 거기서 잠깐 쉬다 다시 노를 저어 다음 포인트로 갔다. 거기서 지금까지 타고 온 카약을 트럭에 싣고 그 트럭을 타고 다음 폭포를 보러갔다.
이번에도 그냥 산에 있는 작은 폭포인 줄 알았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폭포다. 세계에서 크기로는 top 10 안에 든단다. 드디어 비가 그치고 햇빛이 나오기 시작한다. 다들 너무 지쳐 더 이상 카약킹을 하고 싶지 않았다. 가이드도 지쳐 보인다.
그래도 정해진 스케쥴이 있기 때문에 다시 카약을 타고 다시 출발 지점으로 노를 저어갔다. 이제는 진짜 젖먹던 힘까지 꺼내서 노를 저어야 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30분 정도 카약을 타고 마지막 포인트에 도착했다. 다들 축하하며 옆에 있는 바로 가서 맥주 한잔씩 하고 헤어졌다.
매트와 우리 일행들은 저녁도 거기서 먹자는데 나는 방에 놔두고 온 카메라가 걱정이 되서 혼자 숙소로 먼저 가기로 했다. 아무리 안전한 라오스라지만 혹시나 모른다. 카메라를 잃어버리면 거의 여행 끝이다. 밤이라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걷기가 좀 무서웠지만 밥 먹으면서 계속 카메라 때문에 찝찝한 것보다는 낫다 싶어 계속 걸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얼른 방으로 올라가니 다행히 카메라는 그대로 있다.
샤워를 하고 숙소에서 혼자 저녁을 시켜먹고 그대로 기절. 내일은 물축제 송크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