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첫 느낌

by nelly park

지금은 동남아 여행을 10번도 더 해서 손바닥에 지도도 그릴 수 있는 나의 첫 배낭여행일기다.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해 보였던 풋풋했던 그 때. 처음은 항상 소중하다. 첫사랑을 기억하는가.



캐나다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가끔 짧게 여행도 하고 거기서 사귄 친구들을 만나러 간 보름 동안 한 번 그리고 열흘 일정으로 한번 간 일본 여행 말고는 딱히 여행에 미치거나 떠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지는 않았다. 항상 캐나다를 그리워하며 언젠가는 다시 가야지 하는 막연한 생각만 했었다.



그 당시 같은 직장을 다니던 그레이스가 같이 직장 그만두고 동남아로 두 달 동안 배낭여행을 가자고 했다.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두 달이나 여행가서 도대체 뭘 하느냐고. 보름 동안 일본 여행 갔을 때도 피곤했고 거기다 열흘이 지나니 여행을 하겠다는 의욕도 떨어졌었는데 두 달이라니. 게다가 그레이스는 벌써 동남아 여행이 네 번째란다. 이것도 이상했다. 세상에 가볼 곳이 얼마나 많은데 동남아만 세 번 가고 지금 또 가자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가 나는 물었다.


"두 달 동안이나 여행가서 도대체 뭘 해?"


그레이스는 웃으며 말했다.


"가보면 알꺼야. 넬리는 분명 좋아할꺼야"


일단 가보기로 했다. 딱히 배낭도 없어 그레이스한테 빌렸고 뭘 가져가야 할지도 몰라 대충 옷가지 몇 개랑 세면도구 등을 챙겼다. 별로 챙긴 거도 없는데 내 배낭은 금새 빵빵해졌다. 반면 그레이스는 나보다 가방도 작은데 정말 없는 거 빼곤 다 있었다. 여행의 고수다. 호주도 백만 원정도 들고 가서 중고차를 사서 텐트에도 자고 차에서도 자고 하면서 호주 전역을 1년동안 다 여행했단다.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태국 방콕으로 향했다.



나는 태국은 버스나 택시가 아니고 다들 코끼리를 타고 다닐 줄 알았다. 막연하게 동남아하면 가난하고 코끼리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다들 윗옷은 안입고 신발 따윈 당연히 안신을 것이고 도로도 정비가 안되어 흙바닥일 줄 알았다. 처음 방콕 수완나폼 공항에 도착해서 만난 태국은 나의 상상속의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수완나폼 공항은 생각보다 크고 깨끗했다. 여권을 들고 도장을 찍기 위해 줄을 섰고 내 차레가 되어 웃으며 배운말을 써먹었다.


"싸와디캅!"


이민국 직원도 웃으며 말했다.


"싸와디캅!"


아 진짜 통한다. 영어와 일본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썼는데 통한다. 신기하다.


입국수속이 끝나고 짐을 찾아 공항 밖으로 나갔다. 아직 한국의 여름이 끝나기 전인 9월에 가서 그런지 다행히 그다지 덥다는 느낌은 없었다. 택시를 타도 되지만 최대한 아끼면서 여행하자는 취지를 잊지 않고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는 두 시간 후쯤에 온다고 한다. 여긴 태국이 맞나 보다. 한국에서는 두 시간 기다릴 바엔 택시를 타던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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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동안 머리는 왼쪽만 삭발을 하고 카키색 민소매 티를 입고 팔에 문신이 가득한 여자가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앞으로 뒤로 밀며 다른 한 손으론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을 봤다. 이스라엘에서 왔다는 이 여자랑 말을 하게 되었는데 유모차에 아기를 끌면서 배낭여행을 세 달 동안 할 생각이란다. 충격적이다. 한편으론 멋져보인다. 과연 나도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드디어 첫 목적지 방람푸에 도착했다. 흥분된다. 태국이라는 곳에 막연한 환상이 있었던 거 같다. 태국 여행을 갔다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봤을 법한 "On The Road"라는 책. 군대에서 이 책을 읽은 나는 '제대하면 나도 언젠가 이런 멋진 곳에 가봐야지' 했었다. 깨끗한 숙소에 짐을 풀고 날이 어둑어둑해져 잔뜩 들뜬 마음으로 카오산 로드로 입성했다.



책이나 사진에서 본 그대로였다. 세계 각지에서 온 배낭 여행자들로 가득했다. 가지각색 제멋대로 헝클어진 머리와 헐렁한 바지에 때타고 햇빛에 빛을 바랜 옷을 입은 이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다. 맥주를 한 손에 들고 춤추며 돌아다니는 사람들. 물건 하나라도 더 팔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호객꾼들. 거리에는 가지각색의 음식들이 넘쳐났고 달빛을 닮은 거리의 간판들은 밤이 되어 더 빛났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자유 그 자체였다. 눈이 번쩍 뜨였다.



그렇게 흥분된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맞은편에 있는 카오산보다는 조금은 조용한 거리 람부뜨리 입구에 있는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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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산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이 거리는 입구부터 반짝반짝 빛나는 조그만 전등으로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맥주 한 병씩을 시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절로 미소가 나온다. 아무것도 안해도 좋다. 처음 마셔본 태국 맥주 창은 이 분위기와 딱 맞아 떨어지는 맛이다. 갑자기 소나기가 쏴하고 쏟아진다. 거리에 있는 노점상들은 내놓은 물건들을 집어넣느라 바빠졌고 우리는 땅을 축축하게 적신 이 비를 보며 감상에 젖었다.



반짝반짝 거리는 이 불빛들과 시원한 이 비가 우리를 반겨주는 거 같았다.



그렇게 동남아 여행은 시작됐다.



이때까지는 내가 태국과 사랑에 빠져 계속 태국으로 올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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