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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Jun 10. 2021

고래투어

미리사

고래투어날이다. 내 인생 중 가장 경이로운 순간을 몇 개 꼽아보라고 하면 망설임없이 캐나다 토피노에서 간 고래투어를 1번으로 말하곤 한다. 벌써 10년도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뻥 뚫리고 소름이 돋는다. 태어나서 처음 본 야생고래라서 그런걸까. 내 키보다도 더 큰 야생 독수리를 봐서 그런걸까 그 장면이 아직 눈에 생생하다. 그리고 오늘 스리랑카에서 그 고래를 보러 간다.


7시 숙소 픽업이라 6시반쯤 하품을 하며 숙소 라운지로 나와 간단하게 토스트와 커피를 한잔했다.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없는데 서양 여자애 한 명이 나와 같이 하품을 하며 커피를 마시고 있다.


“너도 고래보러가?”



이 친구 이름은 제니. 영국인이다. 그리고 나와 동갑내기. 짧은 일정으로 스리랑카를 여행하면서 고래만 보고 내일 또 다른 도시로 바로 이동한단다. 다행히 혼자는 아니다. 시간이 되어 픽업 툭툭을 타고 5분 정도 가니 선착장이 나온다. 설렌다. 고래라니. 투어 티켓에 적혀 있다.


‘고래를 못봤을 때는 100퍼센트 환불해 드립니다’


적어도 고래를 못보고 돌아오진 않겠구나. 배에 올라타 천천히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한 30분 정도 갔나. 주위에서 와! 하는 소리가 들린다. 고래가 나타났나보다. 고래를 보기 위해 객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뱃머리로 나오기 시작한다. 사실 유리로 된 객실이라 앉아서도 저 멀리 고래가 보이긴 하지만 좀 더 가까이서 봐야 제 맛 아닌가. 물론 멋진 사진도 찍어야 한다. 


이 순간을 위해 줌이 되는 미러리스 카메라를 들고 왔다. 캐나다에서 찍은 고래 사진들은 고래라기 보다는 검은 점에 가까운 사진들 밖에 없었다. 그래서 항상 아쉬웠었다. 티비에서 보던 대포 같은 카메라는 아니지만 그래도 줌을 해도 어느정도 화질이 살아있는 카메라다. 사진 찍을 준비 완료다. 


꽤 가까이서 고래들이 수면위로 올라온다. 점프 하진 않지만 그래도 고래구나 할 정도는 된다. 고래들은 사진 찍으세요 하고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검은 등만 잠깐잠깐 보여주며 사진 찍으려고 하면 이내 사라져버린다. 가끔씩 물을 뿜긴 하지만 그 찰나를 사진에 담긴 생각보다 힘들었다. 배 위에 나혼자 카메라로 초점을 맞추고 대기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같이 있어 자리잡고 기다리기는 뭔가 미안하다. 거기다 날씨도 덥다. 객실에서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내리쬐는 햇볕 때문에 금방 땀범벅이 되어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느라 바쁘다. 


결국 이렇다 할 사진은 건지지는 못했다. 그나마 고래 형체와 물 뿜는 순간을 캡쳐한 사진은 잃어버린 내 폰 속에 있다. 기대를 너무 많이 한 탓일까. 캐나다에서 느낀 그 전율은 느끼지 못한체 다시 배를 타고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제니도 나처럼 기대를 많이 했는지 조금은 실망한 듯하다. 이 투어는 숙소에서 선창작까지는 픽업 툭툭이 오지만 다시 돌아갈 때는 알아서 가란다. 너무 더워 다시 툭툭을 잡아 탈까 했지만 그냥 제니랑 얘기하면서 바닷가로 걸어서 돌아가기로 했다. 조용한 바닷가를 걷아 출출해져 간단하게 밥도 먹을 겸해서 분위기 좋은 식당에 앉았다. 해변에 무심하게 테이블 몇 개가 놓여 있는 식당이다. 



각자 샌드위치와 맥주 한병씩 시켰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밀물 때인지 파도가 우리 테이블 밑까지 오더니 내 조리를 가지고 돌아간다. 나는 깜짝 놀라 얼른 뛰어가서 조리를 다시 집어왔다. 충분히 웃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제니는 웃음이 별로 없다. 말투도 딱딱하다. 전형적인 재미없는 영국인이다. 바다를 보며 맥주 한병 더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얼른 정리해버리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오니 항상 바지만 입고 있는 남자애들 둘이 앉아있다. 푸근한 아저씨 인상의 남자애는 클라우디오. 벨기에인이다. 그리고 훈훈하게 잘생긴 남자애는 하메즈. 스페인인이다. 재미없는 제니와 작별인사를 하고 이 친구들과 한참 수다를 떨었다. 클라우디오가 말한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서 독일인 아버지 때문에 독일에 주욱 살다가 지금은 벨기에 시민권자야. 그래서 살아가는데 국적은 아무 의미 없는 것 같애. 나는 그냥 클라우디오야”


재밌는 친구들이다. 그리고 더 재밌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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