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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에 쥐들어오고 개떼들한테 쫒기고 란타우트레일 (3)

만청포 (Man Cheung Po)에서 푸이오 (Pui O)까지

by nelly park

어제 너무 힘들어서 7시쯤 뻗었다가 발에 뭔가 떨어지는 느낌에 화들짝 깼다. 벌떡 일어나서 핸드폰 불빛을 비춰보니 쥐가 텐트안에 들어와 있다. 잠이 덜 깨서 이게 무슨 상황이지하고 멍하게 쥐를 잠깐동안 바라보았다. 이게 도대체 어디서 들어온거지 생각하며 텐트문을 열고 쫓아내려고 했지만 쥐는 길을 못 찾는지 요리조리 도망만 다니다 결국엔 나갔다. 너무 놀라서 밖에 나가서 바람을 좀 쐤다. 나 혼자만 산에 있는 고요한 밤이다. 하늘을 보니 별도 많다. 새벽 2시반쯤이다. 다시 텐트로 들어와서 쥐가 들어오면 어쩌지 하며 스르륵 다시 잠이 들었다. 피곤하긴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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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침 5시쯤 눈을 떠서 5시반쯤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날이 밝아오고 텐트를 자세히 살펴보니 쥐가 텐트 안쪽 메쉬 망에 구멍을 파 놨다. 텐트안에서 음식 냄새가 났나 보다. 정말 별일이 다 있다. 꿈이었나 싶기도 하지만 쥐가 만들어 놓은 주먹만 한 구멍은 너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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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먼 길이 예상되어서 냇가로 가서 물을 넉넉하게 정수했다. 2.5리터 정도다. 어제 걸어보니 더운데 물이 부족해서 아껴서 마시느라 더 힘들었다. 조금 무겁더라도 넉넉하게 챙겨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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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를 보니 캠프사이트에서 한시간 좀 넘게 가면 식당이 있다. 신나게 내려갔지만 너무 이른 아침이라 문을 안 열었다. 대신 아침 일찍부터 손님이 찾아온 마을에 큰 개들이 으르렁거리며 짖기 시작했다. 주위에 사람들은 아무도 없고 온몸에 털이 곤두선다. 억지로 모르는 척하고 걸었지만 검은개 한 마리는 계속 따라오며 이빨을 들어내며 짖는다. 너무 무서웠지만 앞만보고 걸었다. 다행히 더 쫓아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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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계속 걸었다. 7키로 뒤에 또 식당이 있다는 정보다. 계속 땀을 흘리며 걸으니 식욕은 없고 시원한 콜라와 맥주 생각이 간절하다. 다시 열심히 걸었다. 도착한 식당이 있다는 곳은 이번엔 마을 전체가 문을 닫았다. 사람이 아예 안 사는 것 같다. 나를 반겨주는 건 한무리의 개떼들이다. 이번에도 침착하게 잘 벗어났다.

계속 산만 타다가 오늘은 바다를 끼고 걸었다. 덜 힘들고 기분도 새롭지만 초조하다. 보조배터리가 내일이면 다 떨어질 것 같아 오늘 내일 것까지 얼른 걸어야 한다. 다행히 바닷길을 걷고 나니 잘 닦인 포장도로가 나온다. 걷기도 쉽고 속도가 나기 시작한다. 가만히 혼자 걸으니 많은 생각이 든다. 폰을 손에 쥐고 살았는데 비행기 모드로 해놓고 사진 찍을 때와 길 찾을 때만 잠깐 폰을 본다. 그리고 식욕 없이 땀 흘리고 물만 마셨더니 자연스럽게 지난 몇 달간 먹은 야식으로 찐 살이 빠지는 것 같다. 여러가지로 디톡스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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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배가 고프다. 아침 6시에 길을 나서 걸은 지 22키로 만에 마을이 나온다. 걸은 지 여섯 시간만이다. 내가 이렇게 도시를 좋아했나 싶다. 얼른 가게로 들어가 콜라와 맥주를 사서 콜라는 그 자리에서 한입에 털어 넣었다. 아침을 안 먹어서 메뉴 두개를 주문했다. 튀긴 만두와 만두국수를 맥주와 맛있게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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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키로를 넘게 걸었더니 이제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무리했나 보다. 5키로만 더 가면 내일의 목적지 푸이오 (Pui O)다. 발이 아파서 자주 쉬며 걸은 지 열한시간만에 푸이오에 도착했다. 오늘 35키로를 걸었다. 도착한 캠프사이트는 아무도 없는 노지가 아니라 접수처에서 등록해야 하는 캠핑장이다. 다행히 무료다. 얼른 맥주 몇 캔을 사서 한잔하며 신발을 벗고 발을 쉬게 했다. 텐트를 치려고 일어나니 정강이가 부었는지 절뚝이가 되어버렸다. 걷기도 힘들다.

그래도 내일이면 끝난다. 무리해서 내일 끝내려는 이유 중 하나가 씻고 싶어서 였다. 삼일동안 못 씻고 땀을 뻘뻘 흘리며 걸었더니 몸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냄새가 난다. 놀랍게도 여기는 무료 캠핑장 인데 샤워장이 있어서 절뚝거리며 걸어가서 씻고 맥주도 더 사왔다. 더 이상 술이 부족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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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캠핑장에서 글을 쓰고 여유 있는 하루를 보냈다. 오늘도 나는 해냈다. 과연 내일 산 하나를 넘을 수 있을까. 걷기만 해도 다리가 아파서 절뚝거리는데. 일단 맥주 한 캔 더 하면서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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