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탐청 (Pak Tam Chung)에서 팍탐아우 (Pak Tam Au)
오랜만에 개운하게 푹 잤다. 침대는 이렇게 편한 것이었구나. 어제 자기 직전까지 생각했다. 양 발바닥에 물집이 너무 크게 잡혀 가만히 서 있어도 아프다. 그리고 내일은 폭우와 강한 바람이 예보되어 있다. 홍콩 트레일 (Hong Kong Trail)은 하루에 25키로씩 총 50키로면 끝난다. 모레는 폭우와 바람에 캠핑을 안 해도 되지만 지금 이 발로 하루에 25키로씩 걷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맥리호스 트레일 (Maclehose Trail)은 총 100키로지만 오늘 10키로만 걷고 내일 상황을 보고 도시로 다시 돌아오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10키로만 걸으면 되니 아침 일찍 잠에서 깼다가 다시 푹 잤다.
8시쯤 넘어서 아침을 먹으러 나갔다. 홍콩식 아침이 먹고 싶어 인터넷에 찾아보고 갔는데 홍콩음식이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 어제 저녁도 너무 맛있어 다시 또 가야지 했는데 왜 나는 이런 맛있는 것들을 즐기지 못하고 산에서 삼각김밥만 먹고 있는 걸까. 도시로 돌아오면 무조건 다시 가야지.
다시 숙소로 가서 짐을 싸서 나왔다. MTR을 한번 갈아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내려 또 다른 버스로 갈아타서 맥리호스 트레일의 들머리인 팍탐충 (Pak Tam Chung)에 도착했다.
초반코스는 아주 쉬웠다. 대부분 잘 닦여진 평지 임도코스였다. 맥리호스 트레일은 란타우 트레일보다 인기가 많은 것 같다. 란타우 트레일을 걸을 때는 많아봐야 하루에 사람 한 두 명 본 것 같은데 맥리호스 트레일에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나처럼 트레일을 다 끝낼 기세로 온 백패커도 보이고 가볍게 등산으로 온 사람들도 보인다. 10키로만 걸어서 롱케완 (Long Ke Wan) 해변에 캠핑 하려고 했는데 너무 일찍 도착했다. 12시반쯤이다. 거의 안 쉬고 걸어서 숨 좀 돌리려고 앉아서 맥주 한 캔 했다. 롱케완 해변에도 사람들이 꽤 많다. 여기에서 캠핑 하려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삼십분쯤 쉬고 다시 가방을 메고 걸었다. 오늘은 흐려서 뷰가 아무것도 안보인다. 분명히 롱케완 해변의 사진은 푸른 빛깔의 바다였는데 희뿌연 게 뭐가 뭔 지 알 수가 없다. 다행이건 안개가 껴서 햇볕이 안 따갑다. 걷기가 훨씬 수월하다.
어제 푹 쉬고 잘 먹어서 그런지 산 타는 게 쉽다. 쉬지도 않고 잘 올라가진다. 물도 거의 안 마셨다. 걸은 지 7시간만에 식당이 나왔다. 식사 되냐고 물어보니 오케이란다. 일단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 꺼내서 마시고 나온 국수는 진짜 너무 맛있다. 국수 위에 채소와 계란후라이가 얹혀져 있고 밑에는 구운 런천미트도 들어있다. 다 먹고 계산하니 차 좋아하냐고 물으시고 그렇다고 하니 차 한잔하라고 맛있는 차도 한잔 주신다.
“좀 쉬었다 가”
사람 좋은 아저씨다. 맥주에 국수에 차까지 맛있게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마지막 4.1키로. 거의 안 쉬고 걸어서 5시 40분쯤 오늘의 캠프사이트에 도착했다. 역시나 아무도 없다. 아까 식당에서 사온 맥주 한 캔 마시며 텐트를 치고 금방 날이 어두워져서 텐트안으로 들어왔다. 쥐가 뚫어놓은 구멍을 어제 숙소 근처에서 산 밴드로 붙여서 막았다.
텐트 안에 누워 혹시나 들어온 쥐가 없나 후레쉬를 켜보니 내 손바닥보다 긴 왕지네가 텐트를 서성이다 텐트 밑으로 들어간다. 찝찝하다. 피곤해서 기절하고 싶은데 오늘은 왜 이렇게 멀쩡할까. 이름 모를 곤충들과 새소리도 시끄럽다. 오늘 잘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