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티예
오늘도 일찍 눈이 떠진 김에 아침산책을 나갔다. 뭔가 페티예에서 하루 더 있는 보람이 있어야만 할 것 같다. 숙소를 나와 어제 걸었던 오른쪽 길이 아닌 왼쪽길을 따라 걸어봤다. 집집마다 피어있는 새빨간 장미가 기분 좋다. 이름모를 사원을 보는 것도 즐겁다. 바다를 따라 나있는 길이 예쁘다. 아무 생각없이 걷다보니 배를 건조하는 곳까지 왔다. 더 가면 돌아오는 길이 너무 멀 것 같아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슬슬 배가 고파 식당에 들어갔다. 오늘도 메뉴 이름은 모르겠지만 사진을 가리키며 맛있어 보이는 것을 시켰다. 터키식 커피를 주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주인 아저씨가 커피를 가져오며 어디서 왔냐고 물어서 코리아라고 했더니 총 쏘는 시늉을 하며 자기의 아버지가 6.25에 참전하셨단다. 마음 깊이 감사를 표했다. 정말 형제의 나라에 온 기분이다.
맛있게 밥을 먹고 다시 숙소 테라스로 가서 맥주를 한잔 시켰다. 아침 9시쯤이다. 바다를 보며 홀짝홀짝 맥주를 마시다 앞에 앉아있는 다른 여행자들과 이야기하게 되었다.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남자분 이름은 일한. 오늘부터 리키안웨이를 걸을거란다. 딱 봐도 엄청 커 보이는 배낭이 앞에 있길래 몇 키로냐고 물어보니 26키로란다. 저 무게로 리키안웨이 전체를 걸을 수 있나. 내 배낭은 딱 절반인 13키로다. 경이롭다. 작년에 ACT를 6개월동안 이 무게로 완주했다고 하시니 큰 걱정은 안된다. 이런저런 이야기하다 내일 리키안웨이를 시작하는 나와 만날 것을 기대하며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주시고 떠났다. 나도 다시 침대로 돌아와 한숨자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어제 안 가봤던 시내도 구석구석 돌아볼 겸 이소가스도 살 겸 돌아다니는데 아무리 큰 마트를 가도 일상용품점을 몇 군데를 들러도 이소가스는 팔지 않는다. 그렇게 두시간 넘게 걷다가 지쳐서 마운틴듀 하나 사서 마시며 좀 쉬다가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가게 앞에 큰 공업용 가스통 몇 개가 있는 허름한 가게가 있어서 설마하며 들어갔다. 폰으로 이소가스 사진을 보여주며 물어봤다.
“혹시 여기 이런 거 있어요?”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게 안으로 따라오란다. 이왕 사는 김에 큰 사이즈를 샀다. 450리라나 한다.
이소가스를 산 김에 마트에 들러 간단히 데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음식 4개와 라면 5개를 샀다. 내일부터 다시 걸어야 하니 음식을 좀 쟁여 놓아야 한다.
숙소 가는 길에 노점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어서 하나 사먹기로 했다. 터키에서 터키 아이스크림 가게라니. 기다란 막대기에 아이스크림콘을 끼워서 장난치겠지 하고 기대했지만 그냥 주문한대로 딸기맛과 바닐라맛을 한스쿱씩 떠서 콘에 넣어서 준다. 원래 터키 본토에서는 장난을 안 치는건가. 나한테만 안 치는건가. 좀 서운하다.
몇 시간을 걸었더니 피곤하다. 숙소로 가서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해서 널어놓고 또 맥주 한잔을 했다. 슬슬 배가 고파져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하늘은 아직 파랗게 맑은데 비가 한 두방울씩 떨어진다. 뭘 먹을까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아침을 먹었던 참전용사의 아드님이 하시는 식당으로 가서 또 다른 메뉴를 시켜봤다. 도대체 맛없는 터키음식이 있긴 한걸까. 메뉴이름은 모르지만 시키는 메뉴마다 하나같이 다 맛있다.
숙소로 돌아와 같은 방에 있는 중국인 친구와 한참을 얘기했다. 그 친구는 밥 먹으러 나가고 돌아오면 맥주한잔 하기로 했다. 내일 날씨가 맑았으면 좋겠지만 오후부터 계속 비 예보가 있다. 어떻게든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