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하이랜드 웨이 넷쨋날
5시 좀 넘어서 눈이 떠졌다. 여기는 일출이 4시반이라 안대가 없으면 일찍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레인자켓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잔다. 너무 이른 것 같아 6시에 다시 일어나려고 알람을 다시 맞췄다가 그냥 눈 떠진 김에 일어났다. 오늘은 30키로를 걸어야 해서 일찍 출발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오늘도 아침에 비가 쏟아진다. 멀리 가려면 든든하게 먹어 놔야 할 것 같아 식당으로 가서 즉석식품에 뜨거운 물을 넣고 15분 기다리는 동안 100퍼센트 충전된 보조배터리 두개를 챙기고 드라잉룸에 가서 어제 널어놓았던 옷들을 챙겼다. 챙긴 것들을 텐트에 넣어놓고 밥을 맛있게 먹었다. 다시 텐트로 가서 짐을 정리해서 넣고 젖은 텐트를 가방 위에 얹었다. 그리고 우비를 입고 가방까지 잘 덮고 길을 나섰다. 7시가 조금 안됐다. 어제 드라잉룸에서 신발이 완전 바짝 말랐었는데 또 비가 온다. 금방 또 젖겠다. 그래도 아직 젖지 않았으니 어제처럼 포기하고 물위는 걷지 않고 요리조리 잘 피해서 걸었다. 아침 일찍 걸으니 사람이 없다. 음악을 들으면서 가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덜 고독하고 신이 난다. 빗소리를 좋아하지만 이제 그만 들어도 될 것 같다.
걸은 지 한시간이 좀 지나니 비가 잦아든다. 오늘은 진흙탕길이 아닌 돌길이다. 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비가 잦아들고 흐리지만 그래도 풍경이 조금은 선명해졌다. 항상 뿌연 풍경만 보다가 너무 아름답다. 높은 산들이 나타나고 끝없는 능선이 이어진다. 비가 완전히 그치고 걷기 딱 좋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가 되었다. 물론 햇빛이 있었으면 사진이 더 잘나왔겠지만 그랬다면 더웠을 것 같다. 걸은 지 세시간 반쯤 지나니 바가 나온다. 원래라면 이쯤에서 하루를 마무리 했어야 한다. 이렇게 짧을줄 알아서 이틀치를 한꺼번에 30키로를 걷기로 한것이다. 바가 나온김에 따뜻한 커피 한잔했다. 3.5파운드다. 이 미친듯한 물가에 이제는 해탈한 듯하다.
잠깐 쉬고 다시 출발했다. 걷기 좋은 길과 날씨에 기분이 좋다. 그러다 오늘의 숙소로 정한 글렌코 마운틴 리조트 (Glenco Mountain Resort) 에 도착하기 한시간 전부터 다시 비가 막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 속도를 냈다. 길은 다시 물이 고이기 시작하면서 진흙이 되기 시작한다. 바지는 바람 때문에 이미 다 젖고 신발이 젖기 직전에 도착했다. 지금까지의 캠프사이트와는 달리 큰 리조트의 한쪽 귀퉁이에 조그맣게 캠핑 공간이 있다. 캠핑 공간에서 식당 같은 메인 시설과는 꽤 멀다. 리셉션에 가서 캠핑하고 싶다고 하니 사이트로 예약을 하고 돈 내고 그냥 캠프사이트로 가서 텐트 치면 된다고 한다. 캠퍼들은 전혀 메인이 아닌듯하다. 사이트가 오류가 나서 안된다고 하니 그냥 돈 내고 가서 텐트 치라고 한다. 다행히 가격은 싸다. 10파운드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맥주를 하나 시켜서 마시면서 조금 사그라들길 기다리기로 했다. 기네스 한잔 시켰는데 6.5파운드다. 말을 말자.
30분 정도 지나니 조금 잦아드는 것 같아 얼른 나가서 텐트를 치러 갔다. 나가니 다시 비가 쏟아진다. 최대한 빨리 텐트만 치고 가방을 안으로 던지고 들어갔다. 매트와 침낭과 베개를 세팅하고 좀 누워있는데 미친듯이 바람이 분다. 폴대가 바람에 밀려서 휘어져 안으로 들어온다. 너무 무서워서 폴대를 다시 밖으로 보내고 손으로 한참 지탱하고 있었다.
바람이 조금 잦아들고 가이 라인을 설치하려고 밖으로 나갔는데 옆텐트가 쓰러져 있다. 너무 불안하다. 얼른 가이라인 네 개를 설치하고 추워서 안으로 들어왔다. 스틱으로 지지대를 만들어 안에서도 고정시켰다. 그래도 돌풍이 올 때면 우우웅 바람소리와 함께 텐트가 미친듯이 흔들린다. 밖에 나가기 두렵다. 그리고 비도 쏟아진다. 오늘 같은 날은 텐트가 아닌 방을 잡았어야 했다. 이미 늦었다.
다시 바람이 조금 잦아들었을 때 얼른 밖으로 나가 식당으로 가서 햄버거 세트 하나를 먹었다. 16파운드다. 그리고 다시 또 텐트안으로 들어왔다. 다행히 내 텐트는 무사하지만 옆에 다른 텐트가 또 무너져 있다. 이제 밖으로 나갈 생각은 없다. 정말 웨스트 하이랜드 웨이 다이나믹하다.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 밋지한테 물린 온몸이 가렵다. 오늘 아마 바람 때문에 잠을 못 이룰 것 같다. 제발 내일 아침까지만 텐트가 버텨 주길 빌고 또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