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났다! 얼마만에 침대냐

웨스트하이랜드 웨이 마지막날

by nelly park


밤새 너무 추웠다. 캠핑장이 아닌 산에 대충 텐트를 쳤더니 경사가 져서 불편했다. 그래도 아침은 밝았다. 어제 폰 배터리를 아끼려고 8시쯤부터 폰을 안 보고 멍하게 누워있다 8시반쯤부터 잠들었다. 5시좀 넘어서 눈을 떠서 침낭속에서 한참을 앉아있었다. 너무 추워서 밖에 나갈 엄두가 안 나서 앉아있다가 짐을 정리하고 텐트를 접었다. 경량패딩과 장갑도 그대로 낀 채 걷기 시작했다. 6시반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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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오늘도 비가 안 온다. 하늘은 흐렸다 맑았다를 반복한다. 어제 마지막 경사를 낑낑대며 올라온 덕분에 오늘은 걷기 좋은 길이 펼쳐진다. 공기는 아직 차가웠지만 걸었더니 몸이 데워져서 경량 패딩과 장갑을 벗어서 가방안에 넣고 다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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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뭔가 먹고 출발할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냥 걷기 시작했다. 런던에서 어렵게 산 이소가스를 단 한번도 안 썼고 오늘이 쓸 마지막 기회였다. 이소가스로 불을 펴서 물을 끓이려면 바람을 피해서 텐트 안 전실에서 해야 하는데 혹시나 넘어져서 불이 날까 무서웠다. 런던에서 사온 식량도 아직 3개나 남았다. 결국 마지막날까지 그대로 가방에 넣고 걷게 되었다.


어제 저녁도 안 먹은 데다 추워서 잠을 잘 못 잤고 오늘 아침도 공복상태라 발걸음이 무겁다. 비도 안 오고 길도 걷기 쉬운 길인데 좀처럼 거리가 안 줄어든다.


캠핑장에 안 머물고 좀 지나서 자기도 했고 일찍 출발해서 그런지 걷는 내내 단 한명의 사람도 못 만났다. 몇 번이나 지도를 확인했다. 내가 잘못 가고 있는 건가. 그래도 음악을 들으며 흥얼거리며 한걸음한걸음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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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기 한시간 전 쯤되니 반대쪽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을 몇명 만났다. 웨스트 하이랜드 웨이를 끝에서 처음 지점으로 반대로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이제 시작하는 사람들과 나는 이제 끝내는 사람. 기분이 묘하다. 건물이 나오기 시작하고 도로가 나오고 이제 도착지점에 왔다. 드디어 고생 끝났다. 정말 힘들었다. 얼른 끝내고 스코틀랜드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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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걸어서 예약해 놓은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1시가 좀 넘었다. 체크인은 5시부터라서 기다려야 한다. 일단 배가 고파서 밥을 먹으러 나갔다. 점심시간이지만 Scottish Breakfast가 먹어보고 싶어서 물어봤더니 가능하단다. 가격은 런던보다 조금 싸다. English Breakfast와 비슷한데 다른 점은 블랙푸딩과 토마토 스콘 그리고 네모난 스코티쉬 소시지가 들어있는 정도다. 배가 고프니 너무 맛있게 먹고 슈퍼에 들러 맥주 3캔과 쥬스를 사서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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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피곤하고 샤워도 하고 싶어서 매니저에게 물어보니 샤워는 해도 된다고 한다. 얼른 샤워를 하고 다시 공동공간에서 기다렸다. 체크인까지 30분 남은 4시반쯤 이제 참을 수 없을 만큼 졸음이 밀려온다. 의자에 앉아서 그냥 곯아떨어져버렸다. 눈을 뜨니 5시 20분쯤. 옆에서 같이 기다리던 사람들이 아무도 없고 나만 앉아있다. 얼른 체크인을 하고 침대에 누웠다. 일주일동안 텐트에서 자다가 침대에 누우니 아주 아늑하다. 그래도 지금 애매하게 자면 밤에 잠이 안 올 것 같아 남은 식량 세 개중 두개를 가지고 키친으로 가서 맥주와 함께 먹었다. 마지막 하나 남은 건 내일 아침으로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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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밖을 보니 바람이 미친듯이 불어 나무들이 심하게 흔들린다. 오늘 텐트가 아닌 건물에 잘 수 있음에 새삼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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