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에서 아일랜드가기
일주일만에 잔 침대는 편했다. 밖에 부는 바람소리보다는 코고는 소리가 차라리 낫다. 까미노에서 그렇게 싫었던 코고는 소리가 더 낫게 느껴지다니. 사람은 더한 경험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어제 다 싸 놓은 짐을 소리 안 나게 조심조심 들고 6시 반쯤 밖으로 나갔다. 7시에 키친이 오픈하자마자 마지막 하나 남은 식량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었다. 커피도 한잔했다. 결국 단 한번도 쓰지 않은 이소가스는 새것 그대로 기부했다. 7시 44분 기차라서 7시반쯤 가방을 메고 나왔다. 여전히 흐리고 바람은 많이 불고 춥다. 기차에 올라타고 시간이 되자마자 정시간에 바로 출발한다.
그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항상 떠나기 싫은 도시를 떠나야 할때 비가 오는데 여기는 예외로 해야겠다. 그냥 매일 비가 온다. 터키에서 만났던 엘리스가 포트 윌리엄스 (Fort Williams)에서 글래스고로 가는 기차 풍경이 아름답다고 했었다. 잠들지 않고 풍경을 바라보려고 애썼다. 창밖은 내가 고생하며 걸어온 그 풍경 그대로였다. 더 아름답다 거나 멋지다는 생각은 안 든다. 기차길 바로 옆은 사람이 안 다니는 길이라서 사슴을 많이 본 정도다. 여전히 비가 오고 이 멋진 늪지들은 걸으면 발이 빠지겠구나 하는 상상만 들게 한다. 기차로 4시간이면 가는 길을 일주일이 걸려 걸었으니 뭔가 허무하기도 하다.
글래스고에 도착했다. 여전히 비가 왔지만 일주일전 웨스트 하이랜드 웨이를 걷기위해 스쳐 지나온 곳과 다른 느낌이다. 이 도시가 이렇게 분위기 있고 예뻤었나. 걷기에만 집중해서 이 도시를 놓치고 말았다. 아직 공항행 버스 시간까지 한시간이 넘게 남아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재밌는 이름의 가게를 발견했다. ‘Bread meats bread. 햄버거 가게다. 메뉴판을 보니 고추장 마요가 들어간 버거가 많다. ‘스코틀랜드에 고추장 마요가 있어?’ 호기심이 생겨 그중 하나를 안 시켜볼 수 없었다. 버거가 나오고 한입을 베어먹는데 너무 맛있다. 고소한 마요네즈 맛에 버거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는 마지막에 살짝 매콤한 고추장 맛이 일품이다. 너무 맛있어서 계산할 때 고추장 마요는 누구 아이디어냐고 물어보니 예전엔 김치 마요도 있었다며 여러 나라의 맛을 시도해보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맛까지 세계화되고 있다.
기분 좋게 가게를 나와서 비 오는 글래스고를 조금 더 걸었다. 런던과는 또 다른 느낌의 옛날 건물들과 멋진 스코틀랜드 국기가 어우러져 멋스럽다. 웨스트 하이랜드 웨이를 걸을 때는 비 오는 것이 그렇게 싫었는데 이 도시의 분위기는 비가 와서 더 낭만 있다.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아주 작은 공항이다. 체크인을 하고 게이트 앞에서 기다렸다. 생각해보니 스코틀랜드에서 유명한 스카치 술도 못 마셔보고 유명한 haddock 구이도 못 먹어봤다. 웨스트 하이랜드 웨이에 질려버려서 너무 황급하게 이 나라를 떠나는 것 같다. 막상 가려고 하니 아쉽다.
게이트가 열리고 비행기로 가는데 이렇게 작은 비행기가 있나 싶을 정도로 작다. 타는 곳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없고 바로 비행기로 올라타는 구조다. 객석도 한칸 밖에 없다. 비행기에 앉자마자 그대로 잠들었다. 한시간 지나니 쿵하고 착륙한다. 생각보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는 가까웠다.
공항에서 짐을 찾아 나와서 익스프레스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갔다. 버스에서 내려서 숙소까지 잠깐 걷는데 더블린은 런던과 글래스고와 또 다른 느낌이다. 건물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다. 숙소에 체크인하고 씻고 나와서 챗 gpt에게 물어봤던 더블린 top5 펍 중에 템플바로 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도 펍이 많다. 아일랜드 특유의 글씨체와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템플바에 들어가니 이미 라이브 공연이 시작되어서 한창이다. 기네스를 시켰다. 10.45유로다. 기네스는 탭에서 따라서 거품이 완전 내려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따르는게 신기하다. 맥주를 들고 밖에 나와서 앉아서 더블린을 느껴봤다.
맥주를 다 마시고 배가 고파서 여기저기 둘러보다 적당한 것이 없어서 슈퍼를 찾다보니 아시아슈퍼가 있다. 심지어 이름은 한성. 백프로 한인마트다. 반가운 신라면과 안성탕면 하나씩을 사서 숙소로 돌아와 섞어서 끓여먹었다. 돈도 아끼고 든든하고 좋다. 배가 좀 차면 다른 펍도 가려고 했었는데 첫날이라 그런지 피곤하다. 이제 놀 체력이 많이 없다는 걸 느낀다. 좀더 어렸을 때 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 푹 쉬고 내일부터 펍 투어를 다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