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오늘도 푹 잤다. 어제보다 조금 더 느지막이 움직였다. 조식 시간에 딱 맞춰 가봤자 줄을 선다. 조금 늦게 간다고 해서 문 닫는게 아니니 좀 천천히 갔다. 역시나 줄이 없다. 같은 메뉴를 접시에 담았다. 빵 네개랑 햄 네개, 살라미 종류별로 네개씩 소시지빵 두개, 과일들 그리고 커피. 아주 배부르게 먹었다.
숙소에서 좀 쉬다 밖으로 나갔다. 해가 쨍쨍하게 떴다. 어제 더블린에서 유명한 관광지들은 대부분 가봤으니 아웃도어샵을 검색해서 가봤다. 특별히 꼭 사야할 것은 없지만 혹시나 싶어서 가봤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고 역시 여기 물가와 비슷하게 비싸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기네스 공장으로 갔다. 더블린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코스답게 오전인 데도 줄이 길게 서 있다. 티켓을 어떻게 사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줄을 섰다. 그리고 옆에 안내표지판에 있는 QR을 스캔하니 티켓 구매가 된다. 얼른 티켓 구매를 했다. 여러가지 옵션이 있는 티켓들이 있었는데 가장 기본으로 샀다. 가이드 없이 혼자서 투어하고 마지막에 맥주 한잔 마실 수 있는 걸로 해서 30유로다. 나쁘지 않다. 티켓검사를 하고 입장했다. 1층에는 기념품 샵이 있고 2층부터 층별로 기네스 맥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의 설명과 역사가 잘 전시되어 있다. 7층에 올라 가니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바가 있다. 기네스 한잔을 시켜서 통유리로 된 창밖을 봤다. 더블린에는 우리나라처럼 높은 빌딩이 거의 없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더블린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것이 멋지다. 기네스 공장의 특별함은 이 뷰를 보며 맛있는 맥주 한잔 할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30유로의 가치는 여기서 다했다.
즐겁게 오늘 할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샌드위치를 하나 샀다. 그런데 뒷주머니를 보니 지갑이 없다. 아까 줄 서 있을 때 누군가 훔쳐간 건가. 일단은 폰에 등록해 놓은 카드로 결제했다. 식은 땀이 난다. 이대로 여행이 끝나는 건가. 물론 카드 하나는 더 있다. 환율 우대가 안되는 카드긴 하지만 여행은 가능하다. 그래도 카드를 잃어버리니 전의가 상실된다. 한국에 들어오라는 계시인가. 아직 결제됐다는 메시지가 안 오는걸 보니 누군가 사용은 안하고 있는 거다. 샌드위치를 먹고 다시 기네스공장으로 가 봐야겠다. 그런데 과연 간다고 해서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누가 가져갔는지 찾을 수나 있을까. 일단 한국에 전화해서 카드 정지부터 해야 겠다. 샌드위치를 먹으며 여기까지 생각이 정리되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 종일 지갑을 꺼낸 적이 없다. 어제 자면서 뒷주머니에 지갑이 있는 게 불편해서 빼고 자놓고 밖에 나갈 때 아예 안가져간건 아닐까. 일단 침대로 가보자. 베개와 이불을 다 들쳐봤다. 다행히 지갑이 있다. 그 짧은 순간에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갑을 더 잘 챙겨야겠다. 안도감을 느끼며 한숨 잤다. 그리고 침대위에서 푹 쉬다 배가 고파서 한인슈퍼에 가서 컵라면 두개를 사서 먹었다. 그리고 밤이 될 때까지 숙소에서 쉬었다. 오늘은 꼭 더블린의 밤이 보고 싶다. 너무 일찍 나가면 밤이 오기전에 또 지쳐서 들어올 것 같았다. 9시 50분이 일몰이라 9시 10분쯤 나갔다.
더블린이 어둑어둑해지고 반짝반짝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다. 챗 gpt에게 물어보니 ‘Mulligan's’가 로컬 분위기라고 해서 지금까지 한번도 안 가본 숙소 반대편으로 걸어가봤다. 도착한 Mulligan's는 너무 로컬 스러웠다. 아는 사람들끼리 너무 즐거운 분위기 같다. 아시아인 혼자 가서 끼기는 힘들 것 같다. 안되겠다. 역시 템플바 쪽으로 가 봐야겠다. 템플바는 밤이 되니 장식해 놓은 불빛이 더 반짝거리며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난다. 사람들도 다 들떠 있다. 여기다. 템플바에서 한잔하고 싶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들어갈 수도 없다.
템블바가 보이는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자리 잡았다. 오늘이 아일랜드 마지막이니 아이리쉬커피를 시켜 봤다.
커피 위에 휘핑 크림이 올라가 있다. 처음 마셔 보는 거라 어떻게 마시는 줄 몰라서 옆에 아저씨한테 물어봤다.
"아일랜드인이 아니고 캐나다인이라서 잘 모르겠는데 나 같으면 그냥 안 섞고 그냥 마시겠어"
그렇구나. 잔을 들고 밖에 나가서 자리잡았다. 빈 잔을 치우고 있는 바텐더에게도 물어봤다. 발음을 들어보니 스페인 사람인거 같다.
"나도 안 마셔봤어. 단것 좋아하면 섞어먹고 아니면 그냥 마시는 게 좋을 거 같은데?"
그냥 마셔야겠다. 한 모금 마셔보니 커피향에 마지막에 위스키의 진한 맛이 좋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처마 밑으로 피했다. 그러다 이탈리아인 니노와 프랑스인 주스틴 커플과 같이 이야기하게 되었다.
앞으로 이탈리아도 가고 프랑스도 간다고 하니 이것저것 팁을 준다. 나폴리 사람인 니노는 피자집 리스트와 디저트 맛집을 적어서 보내준다. 주스틴은 파리에 가면 18,19,20 지역은 가지 말라고 한다. 요즘 이민자들 때문에 위험하다고 한다.
우연히 비를 피해 들어왔는데 앞으로 갈 여행지 출신의 사람들을 만나서 팁을 얻다니 운이 좋다. 아이리쉬 플래그 샷을 시켜서 한잔 마셔 보고 (그 쪼꼬만게 9.5유로) 기네스 한잔 더 시켜서 마시고 숙소로 돌아갔다. 더블린의 밤이 이렇게 예쁘고 안전할 줄 알았다면 매일 밤 즐겼을 텐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