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늦게 잤지만 일찍 눈떴다. 큰 창문이 3개가 있는 방인데 커튼이 없다. 그래도 정말 오랜만에 혼자 방에서 잤다. 눈뜨니 7시가 좀 넘어서 조식을 먹으러 갔다. 여기는 유스호스텔이라 그런지 애들이 정말 많다. 지하에 있는 식당에 내려가보니 축구 유니폼을 단체로 입은 10대들이 대부분이고 그들을 인솔하는 듯한 어른 몇명과 여행하는 어른들은 거의 안보인다. 아시아인은 나 밖에 없다. 빵과 햄과 바나나와 커피 한잔을 들고 자리에 혼자 앉아 얼른 먹고 일어서서 나왔다. 철저한 이방인이 되는 것이 좋아서 여행하는 것도 있지만 너무 혼자 이방인 인것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다시 방으로 오니 혼자다. 편하다. 빨래를 해서 방에 널어놓고 씻고 나왔다. 좀더 잘까 하다가 바람도 쐴 겸 프랑크프루트를 좀 구경해보기로 했다. 아일랜드처럼 비가 오지는 않지만 구름이 잔뜩 껴 있다. 날씨도 아일랜드처럼 쌀쌀하지는 않지만 바람이 좀 분다. 보름만에 반바지를 입었다. 제일 번화가인 작센하우젠 (Sachsenhausen) 에 숙소가 있어서 마인강이 바로 앞에 있다. 다리만 건너면 프랑크프루트에서 꼭 가봐야 할 뢰머광장 (Romerberg) 과 카이저돔 (Kaiserdom) 대성당이 있다. 기온은 따뜻하지만 바람이 불어서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걸었다. 다리를 건너서 조금만 걸으니 대성당이 나온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더 걸으니 뢰머광장이 나온다. 생각보다 규모가 너무 작아서 놀랐다. 5분정도만에 뢰머광장은 끝났다. 보이는 건물들은 물론 한국과는 다른 유럽건물모양이지만 지금까지 다녀온 다른 유럽과는 달리 좀더 현대적인 느낌이다. 아마 전쟁 때 다 부서지고 새로 지어서 인것 같다. 좀 더 걸어서 시티센터까지 구경하고 유명한 아이언 브릿지를 건너서 숙소근처까지 돌아왔다. 2시간도 안 걸은 것 같다.
그냥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 아쉽기도 하고 목이 말라서 슈퍼에서 맥주를 사서 카드로 계산하려고 하니 카드는 수수료가 붙는다고 한다. 옆에 ATM에서 100유로 뽑았다. 어차피 유럽에서 아직 두 달은 더 있어야 한다. 슈퍼 앞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따서 마시니 맥주가 아니다. 애플사이더 같은거다. 아무렴 어떤가 목만 축였으면 됐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한숨 잤다. 숙소에서 푹 쉬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기로 했다. 6시쯤 나갔다. 그동안 비싸기만 하고 맛없는 음식만 먹다가 독일에 왔으니 제대로 먹고 싶었다. 구글맵에 식당을 치니 ‘Ebbelwoi Unser’ 라는 식당이 가깝고 리뷰도 좋다. 식당에 가니 이미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 거의 만석이다. 식당의 규모나 손님 수에 비해 직원들은 많이 없다. 카운터에서 기다리다 혼자 왔다고 하니 내 뒤에 혼자 온 서양인남자와 같은 테이블로 안내해준다. 그리고 긴 나무 테이블 가장자리에 마주보고 자리잡고 앉았다.
둘이서 인사를 하고 메뉴를 보고 있으니 옆에 앉은 독일인이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해준다. 프랑크프루트 전통음식과 애플사이더도 설명해주고 이 식당에는 주인이 직접 노래도 부르고 시 낭송도 해서 인기가 많다고 한다. 프랑크프루트에 오면 꼭 와봐야 할 식당이라고 한다. 운이 좋다. 별 생각없이 들어왔는데 이정도라니. 독일인 요나의 추천대로 프랑크프루트식 슈니첼과 맥주를 시켰다. 애플사이더는 요나가 이미 시켜서 마시고 있었는데 잔을 하나 더 시켜서 마셔보라고 준다. 특이한 건 애플사이더에 물을 타먹어야 한다는 거다. 아까 슈퍼앞에서 마신 애플사이더보다 조금 신맛이 강하다. 맛있다.
프랑크프루트식 슈니첼은 기가 막혔다. 맥주도 맛있었다. 내 앞에 앉은 미국인 크리스와 요나와 요나 친구 독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것도 재밌다. 갑자기 종이 울리더니 쉿 하는 소리와 함께 식당이 조용해지고 사장님이 노래를 부른다. 다같이 호응하며 박수 치며 즐긴다. 이런 게 독일문화구나.
요나가 느끼기에 독일의 문제점은 인터넷이 안 터지는 곳이 많고 느리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차가 자주 연착되고 취소된다고 한다. 유럽 경제강국에도 이런 문제점이 있구나. 모레 렌슈타이크 (Rennsteig) 하이킹 할 때 인터넷이 안 터질 것 같아서 조금 걱정이 된다. 미국인 크리스는 구글에서 일하고 있는데 출장 겸 유럽여행중이다. 나는 한국에서 일 그만두고 4개월정도 유럽여행 중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열흘 휴가 받기도 어려워서 그냥 일 그만두고 나왔다고 하니 다른 유럽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맛있게 밥을 먹고 다시 숙소로 가서 한시간 정도만 쉬고 어두워지면 다시 맥주 한잔하기로 했다.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방문이 열린다. 오늘은 다른 손님이 있나 보다. 이탈리아인 알베르토다. 잠깐 얘기하고 나가려고 했는데 이야기가 잘 통해서 이럴 게 아니라 밖에서 맥주 한잔하면서 얘기하자고 하니 좋다고 한다.
한국과 유럽의 역사와 정치 이야기를 했다. 좋아하는 책 총균쇠와 사피엔스 얘기도 했다. 한국영화를 최근에 봤는데 너무 좋았다고 한다.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를 보고 반해서 그의 영화 네개를 더 봤단다. 나는 평소 영화를 즐기지 않아서 유럽영화든 할리우드 영화든 별로 아는 것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한국가면 영화도 좀 봐야겠다. 유럽역사도 조금 더 공부해야겠다.
12시가 좀 넘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프랑크프루트는 유럽 여행중 가장 특색없는 지루한 도시지만 많은 만남과 이야기가 있는 도시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