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히 어떻게든 먹고 잘자리도 찾으며 걷는다

렌슈타이크 둘쨋날

by nelly park


6시반쯤 일어나서 슬슬 짐을 쌌다. 독일의 아침저녁은 아직 꽤 쌀쌀하다. 경량 패딩을 입고 자켓을 입고 손발이 시려서 장갑도 끼고 양말도 신고 잤다. 어제 급하게 텐트를 치느라 경사를 미처 확인하지 못했었다. 자면서 계속 딩구르르 옆으로 미끄러져서 푹 못 잤다.


어제 많이 걸었으니 오늘은 많이 안 걸어도 되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아무리 지도에서 쳐봐도 오늘의 목적지 오버호프 (oberhof)까지는 30키로가 나온다. 일단은 걸어 보기로 했다. 출출하지만 식당이 곧 나오겠지 하는 생각에 계속 걸었다. 어제 많이 걸었지만 다리는 생각보다 괜찮다. 음식은 아예 안 챙기고 물도 거의 안 들고 다녀서 그런지 어깨도 안 아프다. 장기간 걸을 때 항상 다리보다 어깨가 아파서 피로가 빨리 왔었다. 이번에는 트레일 중간중간마다 자주 있다고 하는 식당을 이용하기로 했다.


1시간 반을 걸어서 간 식당이 문을 닫았다. 식당 앞 나무 의자에는 주인 아저씨가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고 있다. 지금 영업하냐고 물어보니 원래는 문을 여는데 오늘만 사정이 있어서 문을 닫았단다. 절망적이었지만 일단 의자가 있는 김에 앉아서 쉬기로 했다. 한참 앉아있다가 주인아저씨한테 혹시 커피만은 안 파느냐고 물어보니 잠시 생각하더니 블랙? 밀크? 물어보신다. 블랙이라고 하니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커피를 가져온다. 얼마냐고 물어보니까 그냥 주겠다고 하시며 다 마시고 잔은 가게 문 앞에 놔두라고 하시고 차 타고 쿨 하게 떠나셨다. 따뜻한 커피로 일단 허기를 달래 봤다. 또 식당이 나오겠지.


커피를 다 마시고 가게 앞에 잔을 놔두고 아저씨는 안계시지만 감사하다고 말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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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풍경을 사진 찍고 있는 서양인이 보인다.


“혹시 사진 찍어줄까?”


“오, 그래주면 고맙지”


서양인 남자는 독일인 스테판. 오늘의 목적지도 오버호프로 같아서 어쩌다 같이 걷게 되었다. 나보다 8살 많고 직업은 Archive (기록 보관소)에서 저장이 필요한 문서와 그렇지 않은 문서를 분리하는 일을 한다고 한다. Archivist (기록 보관 담당자)다. 나에겐 생소한 직업이다.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독일의 역사와 정치에 대해서 배웠다. 중간중간에 영어가 막혀서 미안하다며 30년전에 학교에서 공부하고 영어를 쓸 일이 없어서 그렇단다. 그래도 스테판의 영어를 충분히 잘 이해하고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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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계속 고파서 걷다가 나온 식당이 문을 닫았고 다시 계속 걷다가 1시쯤 드디어 문을 연 식당을 발견했다. 맥주와 소세지를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스테판은 원래 체력도 좋겠지만 캠핑을 안 해서 짐이 가벼운지 잘 안 쉬고 빨리 걷는다. 계속 따라가다 보니 어제의 피로도 겹치고 짐도 무겁고 힘들다. 3시쯤되서 한번 더 쉬고 스테판에게 먼저 가라고 했다. 스테판이 빨리 걸은 이유는 6시까지 호텔 체크인을 해야만 한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때까지 오버호프까지 갈 자신이 없다. 스테판은 헤어지기 전 가방에서 주섬주섬 이것저것 꺼내더니 배고픈 나에게 준다. 독일식 빵과 소시지, 견과류 그리고 초콜릿까지 준다. 그리고 헤어짐이 아쉬운 눈빛으로 여행 잘하고 만나서 반가웠고 하며 긴 작별인사를 하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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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금 더 쉬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제 너무 힘들다. 먹은 것도 없고 어제의 피로까지 겹쳐서 몸이 무겁다. 벌써 9시간째 걷고 있다. 오늘은 업힐과 다운힐이 많았다. 다시 챗gpt 캡쳐한 것을 보니 오늘 가는 오버호프가 셋째 날의 목적지다. 3일 걸을 것을 이틀만에 걸으니 당연히 힘들다. 6시반쯤되어 오버호프에 도착했다. 문을 연 슈퍼가 있나 해서 봤더니 있다. 신나서 장을 보러 갔다. 배가 고프니 이것저것 많이도 사서 집어넣었다. 배 고플 때는 절대 장보면 안 된다. 내일 이것들을 들고 걸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다. 일단 배고프니 슈퍼 앞에 길바닥에 앉아서 산 빵과 살라미를 겹쳐서 맥주와 함께 허겁지겁 먹었다. 다 먹고 나니 비가 온다. 얼른 지붕 밑으로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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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허기를 해결했으니 잘 곳을 찾아야 한다. 챗gpt가 찍어준 좌표로 걸어갔다. 30분정도 거리다. 슈퍼에서 산 짐까지 넣은 무거운 가방을 낑낑대며 메고 걸어서 도착한 좌표지점은 나무와 이끼가 우거진 절대 자기 싫은 곳이다. 아까 여기로 걸어오면서 봤던 언덕이 있었다. 왠지 거길 올라가면 괜찮은 평평한 곳이 있을 것 같았다. 없으면 거기까지 힘들게 올라갔다 다시 내려와야 하지만 올라가니 뷰가 기가 막힌 평지가 있다. 얼른 텐트를 쳤다. 텐트안에 들어오니 또 비가 막 쏟아진다. 아까 슈퍼에서 맥주를 한 캔 더 사와서 쏟아지는 빗소리를 안주 삼아서 한잔 더했다. 피곤하다. 말도 안 되게 피곤하다. 오늘은 6만보 걸었다. 내일은 싼 숙소만 있다면 편하게 자고 싶다. 하지만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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