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슈타이크 셋쨋날
기가 막힌 곳에서 잤지만 눕자마자 느꼈었다. 여기도 기울어졌구나. 큰일났다. 밖에 비도 오고 귀찮아서 다시 옮기기 싫었다. 결국은 오늘도 잠을 푹 자진 못했다. 오늘은 정말 얼마 안 걸을 것 같아서 천천히 준비했다. 어제 남은 빵에 햄을 올려서 야무지게 먹었다. 어제 힘들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배고픔 이었어서 든든하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너무 많이 사서 얼른 먹어 치우고 짐을 줄여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8시반쯤 출발했다. 걸은지 3일째라 배터리가 얼마 안 남아서 최대한 아끼며 걸었다. 렌슈타이크 트레일이 힘든 건 잘 곳을 찾아 헤매야 한다는 불확실성과 배터리가 떨어지면 다 끝인데 어디서 이걸 충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확실성이 체력적으로도 힘든데 정신적으로도 불안하게 만든다. 이틀연속 30키로 이상 걸었더니 걷자마자 발에 신호가 온다. 왼쪽 발 안쪽 부분이 땅을 디딜 때마다 아프다. 양쪽 발바닥도 다 부어서 조금만 돌길이 나와도 통증이 느껴진다. 어제 잔뜩 산 음식들 때문에 어깨도 아프다. 그래도 걸어야 한다. 포기할 수는 없다.
그 대신 좀더 자주 쉬었다. 벤치가 보이면 최대한 쉬어 가려고 애썼고 음식도 많으니 자주 먹었다.
3시간쯤 걷고 점심을 먹었다. 스니커즈와 바나나칩을 먹었다. 먹고 한참 쉬고 있으니 어제 헤어졌던 스테판이 온다. 역시 어제가 이별이 아닐 것만 같았다. 스테판은 여기서 2.8키로만 더 걷고 버스 타고 집에 간다고 한다. 부럽다. 나도 그냥 가버릴까 생각이 들었지만 참았다. 스테판의 버스가 올때까지 같이 기다렸다가 보내고 다시 걸었다. 오늘은 돌길이 참 많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했겠지만 발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오늘은 정말 편한곳에서 쉬고 싶어서 목적지인 노이슈탓 (Neustadt) 에 숙소를 찾아봤지만 다 비싸다. 내일 목적지에 캠핑장이 있다고 해서 지도에 검색해봤지만 안 나온다. 내일도 배터리 충전도 푹 쉬는 것도 안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불안하다.
4시쯤 넘어서 노이슈탓에 도착했다. 슈퍼가 보여서 일단 맥주 하나 사서 벤치에 앉아서 마셨다. 혹시나 싶어서 여기 근처에 캠핑장이 있나 찾아보니 5키로 정도 떨어진곳에 있다. 한시간 넘게 또 걸어야 한다. 그래서 버스를 찾아보니 있다. 1시간후 출발이다. 만약에 여기가 문을 닫았거나 자리가 없다고 했다면 나는 무너졌을 것이다.
오늘 아무대서나 자고 걷기를 포기하고 내일 그냥 베를린으로 갔을 것이다. 다행히 버스 타고 내려서 20분정도 걸어 가니 캠핑장이 있다. 그런데 리셉션이 문을 닫은 것 같다. 두리번두리번거리고 있으니 독일 노부부가 오셔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본다. 리셉션 문이 닫은 거 같다고 하니 할머니가 리셉션 문에 붙어있는 번호로 전화를 해서 대신 전달받아서 문 옆에 세이프박스 같은 곳에 비밀번호를 누르니 열쇠가 나온다. 그리고 코인두개가 있다.
열쇠와 코인을 주시며 샤워장 열쇠라고 하시고 텐트는 아무데나 치고 내일 8시에 다시 리셉션으로 와서 돈을 내면 된다고 하신다. 얼른 평평한 곳에 텐트를 치고 샤워를 하러 갔다. 샤워기 부스 옆에 코인 넣는 곳이 있다. 코인 두개를 다 넣으니 물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샤워기를 트니 찬물밖에 안 나온다. 빨간색 밸브를 열고 기다리고 파란색 밸브도 열고 기다려도 계속 찬물이 나오다가 물이 꺼진다. 코인 두 개치 시간이 다 됐나 보다. 어쩔 수 없이 옆에 있는 세면대에 머리를 넣고 머리를 감고 세수도 하고 몸도 대충 씻었다. 텐트 치는 곳 옆에는 콘센트가 있다. 보조배터리를 충전시켜놓고 저녁을 먹었다. 어제 사온 스팸을 숟가락으로 퍼서 치즈에 싸먹었다. 맛이 괜찮다.
그렇게 불안하던 마음이 조금은 나아졌다. 행복은 정말 별거 없다. 내일 또 열심히 걸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