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슈타이크 넷쨋날
역시 산보다는 캠핑장이 좋다. 평평한 평지에 주위에 사람들도 있다는 안정감. 푹 잤다. 그 동안의 피로도 꿀잠에 한몫 했다. 텐트 옆 콘센트에 꽂아놓은 보조배터리 충전도 100퍼센트 완벽하게 되었다. 아침 8시에 리셉션에 돈을 내러 가야해서 좀 천천히 준비했다. 텐트를 정리하고 가방을 들고 리셉션에 갔는데 사람이 있다. 텐트 치고 하루 잔 가격은 14유로. 그런데 카드는 안된다고 한다. 남은 현금은 3유로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하냐고 물어보니 시내에 있는 은행에 가서 돈을 뽑아오라고 한다. 1키로 정도 거리다. 하는 수없이 걷기 싫었지만 가방을 놔두고 걸었다. 은행에 도착해 ATM에 카드를 넣었지만 안된다. 방향을 돌리고 이리 넣고 저리 넣고 해서 5번째만에 돈을 뽑았다. 뭐가 문제였는지 모르겠다. 넉넉하게 200유로 현금이 생기니 여유로워졌다. 앞으로 있을 독일여행에서 이 정도 현금이면 충분할 거 같다. 기분 좋게 걸어오다 마트가 있어서 피자빵 두개와 환타를 사서 아침을 먹었다.
리셉션으로 가서 찾아온 현금 14유로를 내고 다시 걸었다. 렌슈타이크 트레일은 이렇다할 엄청난 뷰는 없고 걷기 좋은 길을 계속 걷는 트레일이다. 이틀동안 3일치를 걸었더니 발이 너무 아프다. 길은 잘되어 있지만 돌길이 많아 걷는 내내 너무 발이 아프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행복하기 위해 걷는데 뷰는 없고 힘들기만 한 이 트레일을 걸을 필요가 있을까.
10키로 정도 걷고 원래의 목적지인 마서부르크(Masserburg)에 도착했다. 12시가 조금 넘었다. 계획대로라면 여길 지나쳐서 최대한 많이 걸어서 최종목적지인 블랑켄슈타인(Blankenstein)에 일찍 도착하는거 였는데 이제는 아닌 것 같다. 결심했다. 이제 그만 걷고 베를린으로 가서 쉬자. 이렇게 무리해서 더 걷다가는 이번 여행에서 가고 싶었던 돌로미티(Dolomites), TMB(Tour de Mont Blanc), 쿵스레덴(Kungsleden) 아무것도 못 걷겠다. 심지어 유럽여행을 다 포기하고 태국가서 그냥 쉬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평생에 유럽은 한번뿐 일테니 조금만 참고 베를린으로 가기로 했다. 구글 지도에 검색해보니 여기서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또 기차를 갈아타고 거기서 또 걸어야 한다. 약 5시간 정도 예정이다.
마음을 결정하니 편하다. 버스시간까지 시간이 조금 있어 정류장 옆에서 커피 한잔 사서 마셨다. 버스가 와서 탔다. 1시간 좀 넘게 걸린다. 목적지는 반호프다. 이틀전에 지나온 곳이다. 반호프에서 이틀동안 죽을 듯이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버스를 타면 1시간 좀 넘게 걸린다고 하니 좀 허무하다. 반호프에서 내려서 에어푸르트(erfurt)까지 기차를 또 탔다. 또 1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다. 기차안에서 가만히 유투브를 보고 웹툰도 읽으니 그렇게 편할 수 없다. 그렇게 좋아하는 걷기가 싫어졌다는 것이다. 에어푸르트에 내려서 이제 베를린 중앙역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2시간 정도 거리다. 커피를 마시고 아까부터 화장실이 가고 싶었는데 참았다가 화장실 이용료가 1유로인걸 보고 고민하다가 그냥 내고 갔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피곤하다. 원래라면 절대 돈을 안냈을텐데 그냥 내고 편안하게 여행하고 싶다.
기차는 빠르게 달려 베를린에 도착했다. 거기서 또 숙소까지 트램을 탔다. 티켓 오피스가 따로 없고 키오스크밖에 없어 37유로를 주고 72시간 짜리 베를린 티켓을 끊었다. 어떤 티켓이 경제적인지 알아보고 할 체력도 없어 그냥 끊고 탔다. 베를린에 내리자마자 사람들 옷차림, 표정, 모든 게 뭔가 힙하다. 프랑크프루트와 그동안 걷던 시골마을 사람들과 다르다. 숙소 근처 역에 도착해서 10분 정도 걸어서 체크인했다. 6인실인데 아무도 없다. 얼른 씻고 빨래도 해서 좀 널고 누워서 뒹굴뒹굴 쉬었다. 쉬다가 좀 심심 해져서 숙소 바로 옆에 술 파는 곳에서 맥주와 과자를 사서 1층 공간에서 한잔했다.
한국에서는 절대 과자를 안 먹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쉬었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다. 최대한 안 걷고 싶다. 한참 누워있다가 배고파서 그저께 사서 남은 식량 중에 남은 참치캔을 따서 퍼먹고 숙소에서 맥주 한 병을 더 사서 또 1층공간에서 마셨다. 다시 침대로 돌아오니 12시가 넘었는데 방에서 영국 여자 셋이서 한잔하고 있다. 피곤하기도 하고 방해하기 싫어서 그냥 침대에 누웠다. 1시가 되어도 끝날 생각이 없나 보다. 늦었으니 불을 꺼달라고 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잤다. 피곤함이 최고의 수면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