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elly park Aug 19. 2019

방비엥 블루라군

새벽 네시에 눈을 떴다. 정확히 말하면 잠에서 깼다.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때문이었다. 우리 방은 현관 바로 위 2층이었고 현관앞에서 라틴계 여행자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잠에서 깨고 다시 잠을 자려고 30분 정도 뒤척였지만 큰 목소리의 스페인어가 귀를 간지럽혔다.


평소 평화주의자인 나는 누가 내 어깨를 부딪히고 가도 내가 미안하다고 할 정도로 싫은 소리를 못하지만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창문을 열고 발코니로 나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한마디 했다.


“미안한데 지금 4시거든. 모두 다 자고 있어. 조용히 좀 해줘. 지금 4시야. 알겠지?”


다행히 바로 그 친구들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아주 가끔씩 이럴 때 영어 잘하면 참 좋구나 하는 걸 느낀다.


다시 기분 좋게 자리에 누워 잠들려는 순간 이번에는 좀 더 멀리서 미국인이랑 호주인이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얼굴은 못봤지만 영어 억양을 들어보면 미국인이랑 호주인이다. 어찌나 “Fucking Fucking” 거리던지. 다행히 조금 있다 잠잠해졌다.


태사랑에서 우연히 본 여기 숙소의 정보가 맞았다. 여기는 시끄러울 거라고 했었다.


아침 7시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다른 숙소를 찾아보러 나갔다. 강을 따라 한참 걸어가 골목으로 들어가니 괜찮은 숙소가 많았다. 어제는 피곤하기도 하고 멀리 강 따라 걸어 갈 생각을 못했었다.


강 바로 앞에 있는 리버뷰가 보일 것 같은 숙소가 있길래 들어서 방을 둘러보니 거의 호텔 수준이었지만 가격은 지금 지내고 있는 숙소보다 조금 더 비싼 수준이었다. 아직은 체크아웃 전 이른 아침이라 주인 아주머니한테 짐을 가지고 다시 오기로 약속하고 나왔다. 기분 좋게 그 숙소를 나와 걸어가고 있으니 루앙프라방에서 만난 형들을 옆 숙소에서 또 만났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인연이다. 형들은 우리가 남긴 메모를 보고 급하게 출발해서 어제밤에 도착해서 자고 일어나 이제 아침 먹으려고 어슬렁 거리고 있었단다.


짐을 옮기고 새로운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다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 강가에 오두막 같이 지어진 예쁜 레스토랑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전망이 너무 좋아 밥맛은 아무래도 좋을 정도였다.


소화도 시킬 겸 좀 걸어서 여행사로 가서 내일 할 카약킹을 예약했다. 태사랑을 보니 방비엥은 카약킹과 튜빙이 유명하다고 한다. 카약킹은 메콩강에서 카약을 타고 내려 가는 거고 튜빙은 튜브에 몸을 싣고 강물이 흘러가는대로 그냥 누워 있는 거다. 고민을 하다 가만히 누워 있는 튜빙보다는 카약킹이 노도 젓고 뭔가 더 액티브 한 것 같아 카약킹으로 하기로 했다. 싼 가격에 잘 한 것 같다. 10불이다.


형들과 다 같이 블루라군으로 가기 위해 툭툭을 잡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본 가격이 있어 툭툭 기사한테 가격을 제시했더니 손을 저으며 안된다고 하고 등을 돌린다. 그럼 어쩔 수 없지 하고 다른 기사한테 말해도 계속 손을 젓는다. 흥정이 안되는 건가 하고 있는데 저 멀리 있던 또 다른 툭툭 기사가 오케이라고 하고 얼른 타란다. 그랬더니 그전에 우리랑 가격 흥정을 하던 툭툭 기사들이 오더니 갑자기 막 싸운다.


“야 우리 손님인데 니가 그렇게 갑자기 가격을 깎으면 어떻하냐”


대충 이런 내용인 것 같았다. 그러더니 처음 가격 흥정한 기사가 가격 깎아준다고 하며 다시 타란다. 그럼 처음부터 가격 깎아줄 것이지. 기분 나빠서 마지막 툭툭기사를 따라서 툭툭에 올라 블루라군으로 향했다.


블루라군으로 향하는 길이 루앙프라방에서 꽝시 폭포로 향하는 길하고는 또 다르게 너무 아름답다. 나무로 새워진 뭔가 허술하지만 고풍스럽기까지 한 담장들이 멋스럽다. 가벗고 뛰어 노는 순수한 라오스 아이들도 좋다. 뜨거운 햇살 아래서 한가롭게 풀 뜯고 있는 물소들도 낭만적이다.




인터넷에서 본 블루라군의 사진은 분명히 파아란 색이었는데 그것보다는 좀 못했다.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한가로운 주위 풍경과 어우러져 라군은 햇빛을 반사해 청록색을 띄었다. 수심이 5m 정도란다.


나무에 올라가 다이빙도 하고 수영도 하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풀밭에 둘러앉아 카드게임도 하고 맥주도 한잔씩 했다. 돌아오는 길은 적당히 시원했다. 닭들과 소들과 강아지들은 함께 어울려 논다. 푸른 잔디가 하얗게 빛난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어제 먹은 돼지 바비큐 구이에 맥주한잔씩 하고 배가 고파 밥도 1kg를 시켜서 밥산을 만들어 쌓아놓고 배터지게 먹었다.


방비엥은 루앙프라방과 다른 또 다른 천국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만날 사람은 꼭 만나게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