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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Oct 29. 2019

피피섬

피피섬. 

 

내가 가봤던 다섯 개의 태국 섬들 중에 제일 좋아하는 섬이다. 확실히 다른 태국의 섬들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더 비치의 배경이 된 이곳은 에메랄드 빛의 바다색과 하얀 모레가 인상적인 곳이다.

 

배에서 내려 어두운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적당한 곳에 숙소를 잡고 나왔다. 한참을 이동해서 좀 씻고 누워 있고 싶었지만 배꼽 시계는 정확했다. 다시 식당을 찾아 나섰다. 피자 가게도 보이고 작은 시장 같은 곳에 푸드코트 같이 몇 노상에 테이블을 펴고 있는 식당이 있어 자리잡고 앉아 파타이를 하나 먹었다. 카오산이랑은 전혀 다른 스타일의 면에 약간 매콤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배가 부르니 조금만 피피섬을 걷다 들어가기로 했다. 언덕길을 따라 주욱 올라가니 수제로 만든 액세서리 가게도 보이고 라이브 음악이 나오는 바도 있다. 이 작은 섬에 있을 게 다 있다. 분위기 좋고 예쁜 섬이다. 

 

아까 배에서 내린 항구쪽으로 걸어가보니 옆으로 해변이 펼쳐져 있고 맡은 편엔 분위기 있는 불빛과 예쁜 천막을 해변에 설치해 놓은 곳이 있어 맥주 한병을 시키고 앉아서 음악을 듣고 있으니 또 다른 여유가 느껴진다. 오늘은 피곤하니 조금 일찍 자야지.

 

아침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보니 좁은 골목골목으로 이루어진 한가로운 거리의 사람들은 다들 여유로워 보였다. 이 섬의 여행자들은 모두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해변에 누워있었다. 어제 파티의 여흥이 끝나지 않았는지 눈이 퀭해져 있는 사람들도 인상적이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조용했던 거리는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형형색색의 간판에 불이 켜지고 아까 눈이 퀭했던 사람들은 진하게 화장을 하고 멋지게 머리를 해서 멋을 내고 거리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온 거리에는 쿵쿵쿵 하는 클럽 음악들이 울려퍼지고 금발에 눈이 파란 서양 여자 여행자들은 각자 자기가 일하는 바의 전단지를 이리저리 나눠주느라 바빠졌다. 

 

낮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깜짝 놀랐다. 유난히 술집이 많은 이 섬은 술집마다 해피 아워가 있어 이 술집 저 술집 돌아다니며 공짜로 술을 먹을 수 있다. 술집마다 서양 여자애들이 나눠준 전단지를 들고 시간 맞춰 가면 공짜로 버켓에 술을 준다. 재밌는것은 술집마다 똑같은 버켓을 쓴다는 것이다. 옆집에서 받은 술을 가지고 다른 술집에 들어가도 다 똑같다. 술이 다 떨어지면 다음 해피 아워가 시작하는 술집으로 가서 또 술을 공짜로 받는다. 술에 취해 아침에 널부러질수 밖에 없는 섬이다.

 

해변에 있는 비치바에는 모래위에서 맨발로 자유로운 영혼들이 음악에 몸을 흔들고 사랑을 나누며 삶을 즐긴다. 피피섬은 파티섬이다.

 

어젯밤 너무 많이 마셨는지 숙취에 괴롭다. 공짜로 주는 버켓은 맛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버켓에 얼음과 레드불, 콜라 그리고 태국 위스키 쌤쏭을 섞어준다. 콜라와 레드불의 달달한 맛 때문에 음료수 마시듯이 쭉쭉 들이키다보니 취하는지 모른다. 그러다 에너지 드링크와 같이 먹다 보면 어느 순간 훅 간다. 그리고 쌤쏭은 그다지 좋은 술이 아니다. 숙취는 어마어마하다.

 

해장으로 뜨끈뜨끈한 쌀국수에 국물을 원샷하니 정신이 좀 돌아온 듯하다. 피피섬이 한눈에 다 보인다는 뷰 포인트로 올라가보기로 했다. 분명히 날씨는 아침이라 선선했는데 아직 술이 덜 깼는지 땀이 비오듯이 쏟아진다. 한 20분 동안 쉬지않고 올라간 것 같다. 진짜 피피섬이 한 눈에 다 들어온다. 알파벳 엑스 모양으로 중간에는 기다랗게 민가와 상점이 형성되어 있고 양쪽 모퉁이에는 돌산이 병풍처럼 막고 있다.

 


몇 년전 쓰나미로 이 아름다운 마을이 다 부서졌다는데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하게 복구된 것 같다. 더 이상 피해가 없었으면 하고 기도하고 이번에는 다시 밑으로 내려가서 해변가로 가보았다. 위에서 내려본 바다 색깔과 다르게 투명한 에메랄드 빛은 아니었다. 모래도 고운 입자보다는 중간중간에 자갈과 조개가 섞여 있어서 맨발로 걷긴 힘들었다. 

 

비가 와서 그런가보다. 비 때문에 바다 밑에 있는 모레가 수면으로 올라와 물과 뒤섞이면서 원래의 물 색깔보다는 좀 탁해보인다. 코사무이 같은 평화로운 바다는 없었지만 그 특유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잠깐 앉아있다 다시 타운으로 가서 밥도 먹고 커피한잔 하며 푹 쉬었다. 역시 어제와 비슷하게 낮의 피피섬은 한가롭다 못해 유령의 도시같다. 

 

이 곳 편의점도 코사무이와 똑같이 육지보다 좀 더 비싸다. 육지에서 물자를 이송해와서 그런가보다. 따지고 보면 100원 200원 차이긴 한데 가난한 여행자다 보니 크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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