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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Nov 02. 2019

26시간 동안의 이동

피피섬에서 쿠알라룸푸르 가기

피피섬에서 마시고 춤추고 놀며 정신 차려 보니 벌써 1주일이나 이 섬에 있었다. 정말 마약같은 섬이다. 시간이 어떻게 간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이 섬을 나가기로 했다. 더 이상 여기에 있다가는 남은 여행이 여기서 끝나버릴 것만 같았다.


벌써 태국과 라오스와 베트남까지 여행했지만 집에 갈 날까지는 아직 2주 좀 넘게 남았다. 딱 2달 여행을 계획하고 방콕으로 들어와 한국으로 돌아가는 티켓을 끊은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지 하다


“어차피 남쪽으로 내려왔으니 다시 올라가는 것 보다는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서 말레이시아로 가보자”


여행 계획도 없고 그 흔한 가이드 북도 없고 스마트 폰이나 노트북 같은 전자기기도 없어 인터넷 정보도 없이 그냥 피피섬 어느 여행사에서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페리와 버스 조인트 티켓을 사서 밤에 떠나기로 했다.


생각보다 피피섬과 쿠알라룸푸르는 멀었다. 일단은 저녁 페리로 섬을 떠나 끄라비로 가서 버스로 갈아탔다. 갈아탄 버스는 밤새 달려 오후 한 시쯤 태국과 말레이시아의 국경마을 핫야이에 도착 했다. 여기서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원래는 여기서 다시 미니버스로 바로 갈아타고 쿠알라룸푸르으로 가면 도착 예정시간은 오후 5시에서 6시 사이였다. 그런데 원래 우리를 태워가기로 한 미니벤은 우리가 안 온다고 먼저 출발해 버린 것이다. 다음 미니벤은 세시간 후쯤 온단다. 그레이스는 화가 났다.


“아니 원래 여기 도착해서 바로 미니벤으로 갈아 타는 것으로 듣고 티켓 끊었는데 이러면 어떻해요 다른 교통 수단은 없어요? 이렇게 되면 거기 도착하면 밤 10시는 될텐데 어떻게 좀 해줘요”


나는 여기서 이렇게 화 내봤자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뒤에서 듣고 있었다. 원래 화도 잘 안내는 성격이지만 동남아에 적응을 해버린 것 같다.


그레이스의 말을 들은 직원은 말한다.


“저한테 이렇게 말해도 어쩔 수 없어요. 저희도 피피섬에 있는 여행사랑 조인되어 있는 여행사라 여기서 따져도 해줄 수 있는 건 없어요. 정 그러시면 피피섬에 가서 티켓 환불 받으세요”


황당한 말이다. 여기까지 밤새도록 달려왔는데 다시 피피섬으로 가서 환불을 받으라니. 에휴 세 시간 기다리면서 그냥 여기 핫야이 구경이나 하지 뭐 하고 포기하고 더워 죽겠는데 시원한 콜라나 마시자 하며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앉아 있으니 이제 불똥이 나한테 튄다. 


“아니 넬리는 상황이 이런데 도와주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서 그렇게 콜라만 마시고 있어? 같이 온 거잖아. 같이 따져서 제대로 가야지. 이렇게 기다려서 다음 차타면 우리 거기 도착하면 밤 10시야. 어둡고 숙소 정보도 없고 어떡하려고 그래?”


그레이스가 씩씩거리며 말한다. 


“저쪽 말 들어보니까 이렇게 따져봐도 어쩔 수 없더만. 그냥 여기 근처 둘러보고 밥 먹으면서 기다리자”


나는 아무렇게 않게 말했다. 그레이스는 화가 가라앉지 않는지 계속 투덜투덜거리다 배가 고픈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는 말에 조용히 따라나온다. 


핫야이는 생각보다 꽤 이국적인 도시였다. 지금까지 같던 모든 국경도시가 그렇듯이 두 나라가 절묘하게 잘 섞인 느낌이 든다. 핫야이에는 지금까지 잘 보이지 않던 중국계 사람들과 중국 글씨의 간판이 많이 보인다. 음식도 태국에서 보다 중국에 있을 법한 요리가 많다. 물론 여기도 가만히 있어도 땀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미친듯이 덥다.


간단하게 밥을 먹고 땀도 식힐 겸 큰 몰이 있어 들어가봤다. 역시 에이컨이 빵빵하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여러가지 옷이 모여 있는 곳에 내려갔더니 어마어마한 인파가 있다. 사람들이 카메라로 사진도 찍고 소리도 꺄아꺄아 지르고 난리가 났다. 모든 사람들이 몰려 있는 시선을 따라가니 태국에서 보기 힘든 하얀 피부에 늘씬한 여자가 있다. 아마 태국에서 꽤 유명한 연예인인가 보다. 별로 관심없는 우리는 땀도 식혔겠다 이곳저곳 구경도 했겠다. 다시 미니벤을 탈 여행사로 갔다. 


미니벤은 예상시간보다 또 두시간 더 늦게 왔다. 이제 그레이스도 그러려니 하나보다. 드디어 좁은 미니벤에 몸을 구겨넣고 다시 말레이시아로 향했다. 국경에 도착해 태국출국심사를 하고 다시 조금 걸어가 말레이시아 입국 도장을 찍고 나와 미니벤에 올라타고 달렸다. 


중간에 페낭이라는 도시에 몇몇 사람들을 내려주고 다시 달린다. 미니벤은 조금 넓어졌다. 그리고 새벽 4시쯤. 어딘지 모르겠지만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했다고 내리란다. 밖은 어둡고 낯선 나라에 와서 위험할지도 모르니 본능적으로 24시간 맥도날드로 들어왔다. 날이 밝으면 숙소를 찾아봐야지.



태국에서 말레이시아까지 26시간 동안의 여정이었다. 눈은 충혈되고 못 씻어서 찝찝하고. 그래도 좋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어떤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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