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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Dec 15. 2019

퍼시픽 페어

골드코스트

통유리로 되어 있어 골드코스트의 뷰가 한눈에 보이는 이 집의 거실에서 내 공간은 그 통유리 바로 옆이다. 일을 마치고 밤에 자기 전 보는 야경도 기가 막히지만 아침이 되어 보는 뷰는 더 멋질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골드코스트는 사계절이 따뜻한 도시긴 하지만 나름 겨울이었다. 통유리 바로 옆에서 자기엔 꽤 추울 것 같았다. 걱정 되었는지 예솔이가 묻는다.


“오빠 괜찮겠어요? 추울 것 같으면 이불 하나 더 드릴께요 덮고 자요”


그래도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아무 잠자리나 잘 자던 난데 옷 좀 더 입고 자지 뭐 하고 거절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게 서핑수트. 하루 중 가장 추운 해 뜰 때 바다에서 서핑해도 춥지 않게 만들어준 내 서핑수트가 있었다. 서핑수트를 안에 입고 자기로 결심했다.


결과는 아주 참담했다. 밤새 거의 한숨도 못잤다. 분명히 서핑수트는 자는 동안 더울 만큼 따뜻했지만 너무 타이트했다. 잠은 편안하고 헐렁한 옷을 입고 자야하는데 자는 내내 온몸에 꽉 끼었다. 특히 중요한 부위. 그 부분이 너무 끼어서 고통스러웠다. 하나 배웠다. 서핑수트는 서핑할 때만 입자.


그렇게 또 비몽사몽 한 상태로 일을 갔다. 역시 일을 가기까지가 힘이 들지 일단 시작하면 일이 끝날 때까지 어떻게 저떻게 버텨지는 것 같다. 그리고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일을 하는 중에 꽉 찬 쓰레기통을 비우러 주방에서 밖으로 나가면서 보는 노을은 정말 감동적이다. 이렇게 멋진 곳에서 일하는 것도 행운인 것 같다. 물론 주방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타이밍이 잘 맞지 않으면 깜깜할 때 밖으로 나간다. 이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리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데이오프.


일을 하며 항상 지쳐 있는 나는 웬만하면 밖에 안 나가고 가만히 아주 가만히 집에만 있으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오랜만에 현아를 만나 조그만 힐링을 하기로 했다. 


“오빠 맨날 카타르 얘기했자나요. 여기 집 근처에 중동 슈퍼마켓 있어요. 거기 카페도 같이 있다는데 한번 가봐요”


너무 반가운 꼬부랑꼬부랑 아라빅 글씨가 쓰여 있는 슈퍼가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진한 중동 냄새가 코를 확 스친다. 아마 중동에서만 쓰는 향신료 냄새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오랜만에 발견한 터키식 커피. 카타르에서 일할 때 정말 자주 마셨다. 터키식 커피는 일반 커피처럼 빈을 갈아서 커피를 내리는 방식이 아니라 주전자 통째로 불에 올려 커피를 끓이는 방식이라 훨씬 걸죽하고 진한 맛에 양은 에스프레소 보다 조금 많은 정도이다. 맛있다. 오랜만에 또 기분이 들뜬다. 힐링이 시작된다.



그리고 퍼시픽페어 라는 몰에 구경 가기로 했다. 몰은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뭔가 테마파크처럼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놨다고 해서 가보기로 했다. 물론 몰에 가도 아직 쇼핑까지 할 돈은 없다. 아직 현아가 빌려준 돈도 다 못 갚았다. 


생각보다 잘 만들어놨다. 내가 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 특유의 차가운 느낌과 꽉 막힌 건물 안에서만 돌아다녀야 하는 것 때문이다. 퍼시픽페어는 대부분의 가게들이 밖에 옹기종기 모여있고 오늘따라 햇빛도 쨍쨍하게 따뜻하다. 아무것도 산 건 없었지만 열심히 돌아다닌 우리는 일단 식당에 가서 밥을 먹기로 했다. 메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음식 중 하나인 ‘치킨 카라게돈’ 좋아하는 이유는 없다. 제일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데 맛있다. 가격도 비싸지 않다. 다른 걸 굳이 먹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자 이제 밥도 먹었으니 힘을 내서 걸어서 브로드 비치로 걸어가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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