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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Dec 17. 2019

브로드 비치

골드코스트


“오빠 여기서 서퍼스파라다이스까지 걸어갈 수 있어요.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브로드 비치가 있는데 거기서 해변따라 주욱 걸어가면 나올 거에요”


분명히 내가 사는 사우스포트에서 퍼시픽 페어까지 버스를 타고 꽤 온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하며 날씨도 쨍쨍하고 좋으니 일단 걸어 보기로 했다. 요즘 일만 하느라 집, 마리나미라지 (내가 일 하는 레스토랑이 있는 곳), 집 마리나미라지만 왔다 갔다 하다 오랜만에 걸으니 기분은 좋다.


골드코스트에 이런 곳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나 가는 사람들 표정도 보이고 건물들의 색깔과 모양이 하나하나 보인다. 스케이드 보드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인사도 하고 특이한 내 바지를 보고 어디서 샀냐고 말을 거는 사람들과 잠깐 이야기도 나눠본다. 



어느덧 브로드 비치의 입구가 보인다. 항상 하던대로 조리를 벗어 가방에 넣고 맨발로 모래를 느끼며 걷는다. 서퍼스파라다이스에는 그렇게 사람들이 많더니 여기엔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사람들이 거의 없다. 그만큼 조용하고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오히려 서핑하기에는 서퍼스파라다이스보다 파도가 좋아 보인다. 



해변을 따라 조용히 걸어봤다. 오늘따라 왜 그렇게 햇빛은 따스한지. 맨발에 닿는 바닷물은 왜 그렇게 차갑지만 고요한지. 얼른 현아에게 진 빚을 갚아야지 하고 발버둥 치며 일만 하던 나에게 은은한 미소를 선물해준 브로드 비치. 이제는 서핑할 때 여기서 해야겠다. 



아무리 걸어도 서퍼스파라다이스의 상징인 Q1 타워는 저 멀리서 우리를 바라만 볼 뿐 더 이상 가까워 지지 않았다. 그렇게 걷고 걷고 또 걷다 지친 우리는 걸은 길을 다시 되돌아서 입구로 나가 버스를 타기로 했다. 결국 버스를 타고 다시 사우스포트에 도착해서 걷고 즐기느라 수고한 우리에게 서로 커피 한잔씩을 선물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다시 일상이다. 


아침 10시까지 출근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 어렵기도 했다. 일하는 시프트를 내가 직접 짜는게 아니라 헤드셰프인 베니가 대충 짜는 거라 어떤날은 밤 늦게까지 일하고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하기도 하고 그리고 어떤날은 일찍 마치고 그 다음 날은 쉬는 날이기도 해서 아직까지는 몸이 적응이 안된다.


삭스에서 일하면서 느끼는게 있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예스맨’ 이었다. 뭐든지 시키거나 부탁받으면 일단 ‘예스’ 였다. 싫은 소리를 못하는 성격이다. 여기서 ‘예스맨’ 이면 손해 보는 게 많다. 일단 호주에서 일하는 동양인 워홀러들. 한국인, 일본인, 대만인 등등. 호주 사람이 시키면 대부분 그냥 한다. 동양 문화 일수도 있겠지만 영어의 부족일 수도 있겠다. 


소라형은 아닌 건 딱 아니라고 잘라 말하는 스타일이다. 


“넬리야 니 일 아닌 건 시켜도 안해도 돼. 아닌 건 ‘노’ 라고 말해야해. 그래야 너를 만만하게 안 봐.”


그렇게 그 사건이 터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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