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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Dec 20. 2019

한국인 워홀러한테 까불지 마라

골드코스트

저녁에 예약 손님이 많아 너무 바쁜 날이었다. 보통은 9시 정도면 마감을 준비하고 청소를 끝내고 10시쯤이면 기분 좋게 맥주 하나를 입고 물고 퇴근한다. 그날따라 밀려오는 단체 손님 때문에 거의 1시쯤 일이 끝나고 마무리를 준비했다. 나는 주방에 벌려놓은 모든 식기를 정리하고 바닥 청소를 위해 큰 양동이 두 개에 바닥용 락스 세제를 풀어 물을 받고 있었다. 지치기도 하고 드디어 집에 간다는 행복한 마음에 들떠 있는데 헤드셰프인 베니가 나를 앞으로 부른다.


“넬리야 우리 요리 다 끝났으니까 여기 청소도 마무리 좀 해주고 가줘. 내일 보자 수고했어”


나는 어이없어 하며 말했다.


“우리도 청소한다고 바쁘니까 다른 셰프들 시켜. 여긴 너네 일이자나. 나 바쁘니까 뒤로 간다”


그러자 베니는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지며 목소리가 커진다.


“내가 헤드셰프야. 내가 시켜면 너는 이걸 해야 하는거야. 알겠어? 여기 먼저 정리하고 너 하는 일해”


나도 따라 목소리가 커진다.


“내가 왜? 여기 니 일이자나. 왜 우리한테 시켜? 너네 피곤하면 내일 아침에 와서 하던지. 나 진짜 바쁘니까 간다”


그리고 뒤로 돌아와버렸다. 여기 삭스 레스토랑은 앞에 손님들이 볼 수 있는 오픈 키친에서 셰프들이 요리하고 우리는 손님들이 안 보이는 뒤쪽의 백키친에서 접시를 닦고 셰프들이 요리할 수 있게 야채나 고기들을 손질해 놓는 게 일이었다. 그리고 셰프들만 피곤한게 아니고 우리도 피곤하다. 백키친을 청소하고 있는데 소라형이 베니랑 잠깐 얘기하고 오더니 난처해하며 말한다.


“넬리야. 걔한테 딱 잘라 말하는 거 진짜 잘했어! 베니가 완전 당황해 하면서 나한테 부탁하더라. 오늘 약속 있어서 가야한대. 그냥 가서 깨끗하게 할 필요 없고. 대충 세제 섞은 물만 바닥에 뿌리고 와”


아마 베니랑 여기 셰프들은 지금까지 시키면 다 하는 한국사람들이 만만해 보였나보다. 영어도 잘 못하고 일자리도 구하기 힘든 골드코스트에서 대들면 잘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예스’하고 다 말하는대로 들어줬나보다. 그래서 아마 워킹홀리데이로 일하러 온 동양인들을 무시하는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나한테는 이것저것 시키지 않게 된다. ‘예스맨’이 다 좋은 것이 아니다. 


소라형은 태권도 사범 출신에 군대는 특공대를 다녀왔다. 그리고 일을 누구보다

잘하는데다 아니다 싶으면 칼같이 ‘노’ 하는 성격이라 셰프들도 잘 건들지 못한다. 굳이 말하자면 모두 소라형에게 쫄아있다. 


한가한 어느날.


셰프 중 하나가 오더니 천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라! 너 태권도 했다며 그럼 발차기 해서 여기 닿을 수 있어?”


소라형은 당연하지 하고 멋지게 발차기를 보여준다.


그렇게 소라형의 루머가 생긴다.


“야 제 특수부대라서 이라크 파병가서 사람도 몇 명 죽였대. 까불면 안돼”


그리고 어느 엄청나게 바빴던 어느날.


프론트키친 백키친 할거 없이 너무 바빠서 각자 열심히 할일 하고 있는데 앞에서 외친다.


“소라! 여기 잠깐 와줘!”


소라형이 뛰어 갔더니 막내 셰프 하나가 쓰레기통 좀 비워 달란다. 소라형은 어이없어 하며 


“우리도 바쁘니까 그런건 니가해. 그리고 나 바쁘니까 내 이름 부르지마”


그래도 너무 바쁜지 그 이후에도 자꾸 형 이름을 부른다.


“소라! 소라! 컴 히얼”


형은 열받아서 말했다.


“한번만 더 내 이름 부르면 죽는다 너”


그랬더니 막내셰프는 웃으며


“죽여봐 죽여봐”


형은 두고봐 하고 다시 바빠서 일로 돌아갔다. 그리고 좀 한가할 때쯤.


막내셰프가 지나가는데 소라형이 뒤에서 목을 감아 초크를 걸었다. 평소에 운동을 즐겨하는 형이라 힘이 엄청 세다. 형은 계속 목을 조르다 막내셰프가 기절할려고 할 때쯤 풀어줬다. 간신히 풀려난 막내셰프는 켁켁 거리며 앞으로 가 헤드셰프 베니에게 이른다.


“베니! 베니! 소라가 나 죽이려고 해. 어떻게 좀 해줘”


그렇게 모든 셰프와 레스토랑 사장님까지 총 동원되어서 소라형에게 진정하라고 말리고 해프닝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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