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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Dec 21. 2019

히피마을 님빈

님빈

“오빠! 님빈이라는 곳에 가면 오빠 같은 사람들 살아요. 그 이상한 바지 입고 히피 같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에요. 한번 가볼래요?”


나만큼이나 여행을 좋아하는 현아가 오랜만에 바람 쐬러 가잖다. 마침 데이오프라 설레는 마음으로 한번 가보기로 했다. 사실 쉬는 날에는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만 있고 싶다. 그만큼 나는 이 일이 힘들었다. 힘들다기 보다는 매일매일 피곤했다. (소라형한테 이 말을 했더니 이만큼 좋은 일이 어딨냐고 어이없어 했다.) 그래도 호주의 히피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까 하는 궁금한 마음이 더 컸나보다.


너무 고맙게도 현아가 여행 정보를 다 알아봤다. 님빈이랑 가까운 도시 바이런베이로 가는 그레이하운드 버스까지 현아가 다 예약해놨다. 나는 그냥 같이 가기만 하면 된다. 


아침 일찍 만나 그레이하운드가 오는 터미널로 같이 갔다. 아침은 바이런베이로 가는 길에 혹시 중간에 쉬면 휴게소 같은 곳에서 대충 먹기로 했다. 그래서 커피한잔씩 하고 조금 기다리니 빨강색 그레이하운드 버스가 온다. 분명히 캐나다 그레이하운드 버스는 회색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버스 색깔은 나라마다 다른 건지 최근 들어 바뀐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화창한 아침에 선명한 빨강색 버스는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 보인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 가니 운전기사 아저씨가 벌써 피곤한지 간이 주유소 겸 휴게소에 선다. 그리고 30분쯤 쉬다 간다고 한다. 안 그래도 배고팠는데 잘됐다. 얼른 휴게소 안에 있는 맥도날드로 들어가서 맥모닝 세트를 하나씩 먹고 커피 우유를 하나씩 사서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창밖에 펼쳐지는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한 시간쯤 더 가니 드디어 바이런베이가 나온다. 버스에서 내리니 이미 다른 세상을 사는 듯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건물 색깔도 느낌도 다른 호주 도시와는 다른 느낌이다. 호주 전체의 도시가 여유로운 느낌이지만 여기는 뭔가 특별히 더 여유로운 느낌이다. 따닥따닥 붙어있지 않은 건물과 건물 사이도 그렇고 그 사이에 듬성듬성 나있는 나무인지 풀인지 하는 식물들도 그렇고 사람들의 걷는 속도 그리고 옷차림까지. 좋다.



님빈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다른 여행자들이 줄서서 기다리는 곳으로 가서 우리도 뒤에 섰다. 조금 기다리니 범상치 않은 포스의 할아버지가 


“님빈?”


그렇다고 하니 표를 끊어주신다. 네덜란드 출신의 이 할아버지는 호주에 정착해서 히피로 산지 3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금 기다리니 아기자기한 모양에 화려한 색깔의 님빈행 버스가 온다. 창가쪽에 자리 잡고 앉아 풍경을 구경하며 님빈으로 천천히 갔다. 가는 내내 할아버지는 님빈과 히피들의 삶에 대해서 마이크로 설명해 주신다. 유쾌하고 자유로운 할아버지다.


님빈에 내리니 도시라기 보다는 뭔가 작은 마을 아니면 작은 공동체 같은 느낌이다. 높은 빌딩은 하나도 없고 건물들이 다들 옹기종기 모여있다. 히피들 특유의 알록달록한 색감의 벽과 다른 사람들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옷 차림새들도 인상적이다. 


도시에 있다가 여기 오니 그냥 여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을 느낀다. 님빈을 구석구석 다 돌아봤지만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멋진 옷들이 너무 많았지만 가난한 나는 그냥 놔두고 올 수 밖에 없었다. 아마 돈이 많이 있었다면 눈에 보이는 걸 다 사고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왔겠지. 


배가 고파 유명한 피쉬 앤 칩스 가게로 들어갔다. 역시나 여기 주인 아저씨도 범상치 않은 외모다. 그래도 실제로 이야기 해보니 친절한 아저씨다. 색다른 이곳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져 몇 번이나 고민한 끝에 옷을 하나 사 입고 나니 조금씩 어둑어둑 해지려고 한다. 밤의 님빈은 왠지 위험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큰 드럼통에 불을 피우고 앉아있다. 그리고 우리를 쳐다보는데 뭔가 다들 눈이 풀려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얼른 다시 바이런 베이로 돌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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