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코스트
나는 비를 좋아한다. 비 맞는 것도 좋고 비를 보는 것도 좋고 빗소리도 좋아한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골드코스트에서 온몸이 흠뻑 젖을 만큼 비가 와서 우산을 써야할 만큼 온 적은 거의 없다. 비오는날 그냥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 쓰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걸어 다니는 것처럼 기분 좋은 날도 없는 것 같다. 비가 떨어져 아스팔트 바닥에 부딪혀 나는 냄새도 좋고 햇빛이 없어 촉촉한 공기 중에 물과 커피 향이 섞여 떠다니는 냄새도 좋다. 차가 지나다니며 물을 솨아아 하고 치는 소리도 좋고 노천카페에 있는 파라솔 위에 투둑투둑 하고 떨어지는 빗소리도 좋다.
대부분 아침에 일을 하러 갈 때는 비가 오지 않는다. 그러다 가끔씩 밖에 담배 하나 피러 갈 때 (호주에 도착해서 돈이 아예 없어서 담배를 끊었지만 일하면서 담배 하나 피고 올께 하고 잠깐 쉬는 시간이 꿀맛 같아서 다시 담배를 시작했다. 군대랑 똑같다.) 아니면 꽉 찬 쓰레기 봉지를 묶어 공용 쓰레기장으로 가져갈 때 비가 내리고 있으면 왠지 설레인다. 물론 식당안에서 일하고 있어 비를 맞지 않지만 비 맞으며 하루종일 일하면 기분은 안 좋을 수도 있겠다. 안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도 알 수 없다.
내가 일하는 마리나 미라지는 항상 느끼지만 뷰가 어마어마하다. 여기에 비가 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따뜻한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하는 마리나 미라지도 멋지지만 흐린 먹구름 때문에 어두운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를 맞는 보트들을 보는 것도 멋지다. 그리고 비가 오는 날이면 손님도 많이 없어 일이 더 한가해지는 장점도 있다.
집에서 내려다보는 골드코스트의 뷰도 비가 오면 다른 느낌이다. 온통 새파랗고 푸른 느낌의 골드코스트의 색깔이 한 두 톤 정도 다운된다. 여유롭다 못해 게으른 느낌의 이 도시도 더 차분해 지는 것 같다. 쉬는 날 바라보는 비 오는 골드코스트는 피곤한 일상에 더 큰 쉼표를 그려주는 기분이다. 통유리 바로 앞에서 지내는 나에게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맥주가 땡기게 하는 좋은 음악이다.
비 오는날 일을 일찍 마치고 걷는 젖은 사우스포트의 느낌은 또 다른 느낌이다. 마리나 미라지의 비오는 강과 집에서 내려다 보는 흐린 골드코스트와는 또 다르게 비가 와서 조금 고인 빗물에 반사되는 반짝반짝하는 도시의 불빛은 로맨틱하다.
이렇게 누군가에게는 우울한 날 또 누군가에게는 낭만적인 골드코스트의 비 오는날. 한국에서 도시가 떠내려 갈 정도로 오는 장맛비를 보고 있으면 적당하게 그리고 축축하지 않고 촉촉하게 내리는 그 비 오는 날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