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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Dec 24. 2019

밤낚시 해보기

골드코스트

일을 시작한지 두 달 조금 넘어 드디어 현아에게 빚진 돈 2000불을 다 갚았다. 현아는 항상 천천히 갚아도 된다고 말은 해줬지만 그래도 최대한 빨리 갚고 싶었다. 호주에 도착해서 돈도 없고 일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데 정착하게 도와준 현아에게 고마워서 밥을 사주기로 했다.


오랜만에 고기도 먹고 싶고 그래도 은인인데 대충 넘어가기 싫어 일본식 야키니쿠 가게로 갔다. 


“먹고 싶은만큼 고기 시켜. 오늘은 내가 쏠께”



라고 했지만 별로 많이 먹지는 못했다. 앞으로도 두고두고 조금씩 밥도 사주고 해야겠다. 사실 돈이 없어서 다른 방법으로 은혜를 갚고 있긴 했다. 호주에서 대학생인 현아의 과제를 조금씩 봐줬다. 캐나다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영어 강사의 경험이 있는 나는 프리젠테이션에는 자신이 있었다. 처음에 현아가 과제 때문에 바쁘다고 하길래 과제를 잠깐 보여달라고 한적이 있었다. 현아는 이 오빠가 뭘 알겠어 하는 표정으로 과제를 보여줬다.


‘훗’


이런건 내 전문이다. 프리젠테이션에 대한 팁 몇 개를 주고 틀린 문법을 싹 고쳐줬다. 그리고 현아는 좋은 점수를 받았다. 그 후로 가끔씩 과제를 하다 막히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했다. 


다음날. 


여느 날처럼 소라형과 라인이형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열심히 일하고 소라형은 오전 쉬프트라 일찍 퇴근했다. 그래서 라인이형과 마감청소를 마치고 조금 쉬고 있는데 소라형한테 연락이 왔다.


“넬리야. 낚시 안갈래? 밤 낚시 완전 재밌어! 가자!”


일 마치고 피곤하긴 했지만 오케이 하고 가기로 했다. 일을 다 끝내고 밖으로 나가 큰 도로 앞에 멍하게 앉아 있으니 소라형이 차로 픽업을 왔다. 소라형과 예솔이 현아까지 우리 가족 총 출동이다. 이미 밤이 추울줄 알고 다들 중무장하고 있는데 나 혼자 일 마치고 바로 가는 거라 발에는 조리에다 구멍이 숭숭 뚫린 청바지를 입고 집업 후드티 하나 걸치고 차에 올라탔다. 낮에는 분명 따뜻했다.



삭스에서 한 30분쯤 간 거 같다. 주차하고 수산시장 같은 곳을 지나 주욱 걸어가니 긴 낚시터가 나온다. 다들 불빛 아래서 야간 낚시를 즐기고 있다. 골드코스트가 사계절 따뜻하다고는 하지만 오늘은 너무 춥다. 진짜 정말정말 추웠다. 낮에 출근할땐 따뜻하고 일 마치고 나면 그 열기 때문에 춥지 않게 퇴근하는데 밤에 낚시대를 물에 꽂아놓고 가만히 서있으려고 하니 진짜 양말도 신지 않은 나는 발이 얼어 버릴거 같다. 폰으로 기온을 보니 지금은 영상 3도다. 


태어나서 처음 낚시라는 걸 해보는 나는 소라형한테 미끼를 끼우는 것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잘봐 이걸 여기 후크에 이렇게 끼우면 되는거야. 그리고 낚시줄을 던질 때 그냥 던지지 말고 손목 스냅으로 포물선을 그리듯이 던지면 돼. 한번 해봐”


처음엔 잘 안되다 그래도 제법 멀리까지 던져서 낚시대를 걸쳐놓고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그렇게 조금 있으니 현아가 소리친다.



“아싸! 잡았다!”


꽤 큰 물고기가 미끼를 물고 퍼득퍼득 거리며 올라온다. 그리고 미끼를 교체하고 또 던지더니 금방 현아는 또 한마리 더 잡는다. 현아 미끼가 맛있는 건지. 현아 자리가 좋은건지. 자리를 바꿔서 나도 미끼를 던지고 기다렸지만 내 미끼는 물지 않는다. 다들 최소 한 마리는 잡았는데 나만 못 잡았다.



그렇게 두 시간쯤 추위에 벌벌 떨며 발만 동동 구르다 결국 난 한마리도 못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재채기가 나온다. 감기 걸렸나보다. 


낚시는 나와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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