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덕업일치 이룬 셈. 서점 일 재미있다. 고된 면 없지 않지만 이건 다른 부문도 마찬가지일 터. 다만 대형서점, 책을 취급하지만 아무래도 상품성에 무게중심. 수익을 좇는 서사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형편. 조직 내 구성원으로는 어쩔 수 없지 싶다가도 속에서 꿈틀대는 나는 ‘아, 이거 못해먹겠네’ 했다. 그러니 정확히는, 내가 끝끝내 어울리지 못하였을 뿐. 소위 마케팅(market + ing) 곧 시장 조성 움직임이나 흐름 자체를 견디지 못했다. 유연을 자처하는 한편에서 견딘다? 자아분리 겪다 못해 이를 자발적으로 적극 주도해야만 가능한 일상을 일상이라 이르는 자체가 못할 짓이긴 하다. 내가 나를 착취하는 지경, 이런 게 ‘자기소외’인가 싶고.
이를 생래적 특질로 타고난 건지도 모를 일이다만. 누군가는 그게 바로 ‘반골反骨 기질’이라더라. 당장의 현실에 입각, 정말이지 적확한 진단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고맙게 생각. 왜냐하면 ‘아니 이게 왜 반골?!’ 하다 이에 이르렀으니 (웃음) 어쩌랴, 부대끼며 거슬리니 대치를 연속하기보다 속에 자리한 무엇과 그것이 가리키는바 기원이랄지 시원이랄지 그를 쫓아 계속해서 기어오를 밖에.
절 싫으면 중이 떠나면 그만. 그뿐이다. 나름의 가설 ─ ‘만일 개체 일부의 특질이 아닌 보편기질이라면 이를 반골로 규정하는 현실이야말로 일편으로 기운, 왜곡 상태이지 않을까’라는 ─ 검증에 전심전력할 따름.
그런데 재화로 취급하던 책 특히 읽어 마땅하다는 고전 등에 담긴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시장 편의에 역점 두는 도서에서조차 궁극은 결국 저 시장 바깥에 전인全人으로 서는 바를 지향하지 않나. 반골의 확증편향이란 곡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거듭 강조하면 그 시장市場은 저가 상정하는 ‘합리적 의사결정 주체’와 부富의 신념을 맹목하는 개인을 구별 짓는다. 나아가 맹목적 개인 간 각자도생 경쟁이 빚는 ‘보이지 않는 손’의 역기능, 곧 자아 분리를 자발적 선택인 양 유도/압박하는 지경을 경고하며 사전 경계를 촉구하는 형편. 그러니까 먹고살자고 서로 간 벌이는 일이 뭔가 이건 좀 아니다 싶은 느낌을 억누를게 아니라 외려 쫓는 모험 감행에 적극적이어야 하리라는 것. 세대를 연속하여 내리고민 이러하건만 이와 상반되는 방향으로 조성되는 일들에 치여 산다? 아니올시다하게 될밖에.
이런 연유로 서점을 직접 꾸리게 된 것. 김승옥 선생 단편 「서울 1964년 겨울」의 한 장면처럼. ‘생(生)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 밤이 됩니다. 난 집에서 거리로 나옵니다. 난 모든 것에서 해방된 것을 느낍니다. 아니,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느낀다는 말’처럼. 그런 ‘꿈틀거림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픈 것. 비록 ‘오 분도 안 돼서 끝나버’릴지 모르지만. 그 단락적인 ‘5분’을 연속적으로 잇고픈 열망. 유사 이래 인간은 이런 식의 창발創發적 유희를 즐기지 않나 싶고. 나 역시 그런 인간 종種의 한 개체이니 당연하다 싶을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