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서점? 운명이다 뿐인가 아모르-파티해~♥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by 사각공간

그러니까 대략 23,4년 전? 기억이 정확하진 않은데 전역 이후이지 싶으니 아마 그즈음이겠다. 재학 중 등록금에 보탤 요량으로 공익광고 출품을 계획한 적 있다. 하지만 디자인 문외한. 그렇다고 포기하자니 아쉽다 할지 꼴사납다 할지 뭐 좀 그랬다. 모자란 머릴 굴려볼 밖에 다른 도리 없는 빈궁한 처지. 당장 할 수 있는 바를 떠올리니, 글자 조합이라면 어떻게 될 것도 같았다. 당시 광고기획이니 어쩌니 한창 그럴 듯하게 보이던 때였다. 카피 한 줄의 힘이랄까, 노골적으로 표하자면 손 안 대고 코 풀면서 산업 첨병 내지 전위 소리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망상? 뭣보다 그로써 벌어들이는 소득을, 막연한 대로 어림이었지만 그래도 요즘 말로 ‘가성비 끝판왕’ 직종으로 비쳤다(물론 그리 보였다는 것이지 정말 그렇다는 건 아니고). 아무튼 그렇게 날로 먹을 궁리를 거듭하며 며칠 허송.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에 앉아 골몰하던 중 퍼뜩 스친 게 사각思覺, 곧 ‘생각할 思 깨달을 覺’이었다. ‘사각四角으로 마름된 공간空間에서의 생활이라면 물리적 제약임이 뚜렷한데 그 제약 가운데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의 사思 각覺은 그를 간단히 넘어선다? 오, 이거 괜찮네!!’ 했다. 그러곤 홀로 어찌어찌(을지로 인쇄골목, 충무로 등지 출력소 기웃대며) 출품은 했다. 당연히 낙선. 신문 하5단 삽입 광고 내용으론 담백하니 괜찮다 싶었지만 바로 실어도 그만인 여타 응모작에 비하면 현저히 떨어지는 품질. 이 때문이었겠지. 지금까지 이렇게 정신승리 중. 아무렴 믿어 의심치 않는다. (웃음)


어차피 하늘 아래 새것 없으니 이 또한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면 술이부작. 한 평 남짓 화장실에 사각思覺이라는 착상을 오버랩 가능케 했던 바탕에는 ‘해우소解憂所’라는 레이어가 자리해 있던 것. 과거에 시청했던 ‘해인사’ 다큐멘터리, 꽤 인상적이었다. 탐식의 오물을 배설할 뿐인 세속의 공간조차 탈속脫俗의 지경으로 도약이라니(물론 당시 다큐는 물론 나 역시 이런 표현을 했다는 건 아니고 느낌이 그랬단 얘기).


아무튼, 한번 ‘사각공간’이라 입 밖에 내니 그 이름이 가리키는 바를 마치 가늠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침내 그에 이르는 양 느껴져 새기려 애쓰지 않아도 절로 각인, 그냥 홀로 벌이는 짓마다 붙여보곤 했다. 그래봐야 당시로선 개인 홈페이지 같은 게 전부였지만.


사실 이런 데에 홀린 이 치고 학창시절을 정상적으로 보내는 경우는 드물지 싶다. 지나고서야 그대로 아주 훌쩍, 일탈 정도 이상의 이탈을 감행하였더라면 하고 무언가 아쉬움 비슷한 감상에 젖기도 했지만. 비정상 부류여도 탈속脫俗을 감행하지는 못하여서 그저 해당 부류 정규분포 내 범인凡人에 불과했으니. 그저 그런 게으름과 방황을 지루한 연속극처럼 이었을 뿐. 다만 정신 행적만큼은 누더기 학적(제적, 휴학, 재입학)마냥 되어선 아니 되겠다 싶어 사이사이 붙들던 게 다름 아닌 책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서점에 입사’ 라고 하긴 그렇고. 처음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게 솔직하겠다. 그도 그럴 것이 경제를 전공했다지만 다른 학우들처럼 딱히 무슨 자격을 취한 바도 아니고, 게다가 그때까지의 배움은 물론 찾아 읽은 데서 비롯한, 곧 이 마음에 움트기 시작한 나름의 신념 비슷한 무엇은, 여타 직군 종사를 위해 갖추어야 할 덕목이랄까 그와는 배치되는 형편. 이런 상태로 달리 어디서 무얼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할 수 있노라 이야기한들 들어줄 곳도 없지 싶었고. 이런 연유로 서점에 발 들여 오늘에 이른 것.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인가, 그럴 수 있겠다 싶은 요즘. 그도 그럴 것이 사각공간으로 이곳 인천에 자리한 순간 모종의 야릇하면서도 짜릿함 같은 걸 느끼기도 했는데. 어렴풋하게나마 운명애運命愛랄지 뭐 그런 종류를 실감하였다 해야 하나. 이제 4년차 접어드는 시점에선 실감뿐 아니라 아예 그 구체성 실현에 목을 매는 형편이긴 하다. 말 그대로 이렇게 살다 죽어도 좋겠다는 느낌?!


이런 이야기, 독자 여러분은 물론이거니와 작가나 출판 관계자분들이 들으면 웃고 말겠지만. (웃음) 부끄럽긴 해도 서점인 역시 매일 책을 만지다시피 하는 건 사실이니 아주 허황된 얘긴 아니지 싶다. 벌이가 박한 건 둘째 치고, 기도 차지 않는 경우를 안팎으로 겪을 적마다 기운 돋우는 데엔 사실 책만 한 게 또 없다. 그러니 계속 찾아 읽게 되고. 왜냐하면 사람에게서 비롯하는 위로.etc 말글의 총체이므로.

이를테면 ‘육면각-건축-체’가 ‘무한’ 증식하는 세기의 도시에서 그 바깥, 이를테면 ‘유계幽界’라는 이계異界에 ‘낙역絡繹되는 비밀한 통화구’ 같은 걸 떠올리던 사람 ‘이상’에 저를 겹치어보기도 하고.

홀리지 않을 도리 없지. 지면에 박제된 활자에 불 댕기는 시선. 문장은 그대로 도화선 되니 머리에서 가슴까지 이어진 불길로, 여기저기 고여 굳어진 것들이 죄다 펑! 펑! 터지고 녹아 흐르니 유연할 수밖에 없다. 미끄러지지 마라 막아도 미끄덩미끄덩 미끄럼 연속이다. ‘걸림 없이 마음 낸다’는 표현을 불경에서 발견하고 마하가섭마냥 파안대소 하는 것도 이 때문이지 싶고.

그러니까 바로 나 자신이 산 증인된 마당. 네모진 지면에 앉힌 말글이 이 속에 뜨거운 무엇을 불러일으키는 바를 몸소 체험, 마치 헤세의 『유리알 유희』 속 ‘크네히트’가 느낀 어떤 ‘소명’과도 같은 걸 부지불식간 잉태한 느낌이랄까. 때문인지 책 이야기를 하다 보면 살짝 간증하는 듯싶은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어쩔 수 없지. 직업병이라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싶고.


이렇게 흘러 이곳에 닿아 맺힌 당장은 ‘사각四角을 넘어서는 사각思覺’을 조력하는 책을 전하는 일 말고는 달리 떠오르는 게 없다.


정말이지 죽어도 좋습니다, 여러분!! ‘_’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위기의 시대, 돈의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