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그러나 불생멸심(不生滅心)이 생멸심과 더불어 심체(心體)가 둘이 아니며 다만 두 가지 뜻을 가지고 마음을 취하여 둘(불생멸심과 생멸심)이 되는 것이므로, 이를 '(여래장에) 의하여'라고 말할 뿐이다. 이는 마치 움직이지 아니하는 바닷물이 바람에 불리어 움직이는 물결을 일으키는 것이니, 동(動)·정(靜)은 다르지만 바닷물의 체는 하나이므로, 정수(靜水)에 의하여 동수(動水)가 있다고 말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 중의 도리도 또한 그러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_은정희 역주,『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 일지사
이미지로서 사물은 이 의미에서 저 의미로,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혹은 낮은 데서 높은 데로 편력하게 될 강렬도적 상태들의 시퀀스, 순수 강렬도의 사다리나 회로를 구성할 뿐이다.¹ 이미지란 이러한 편력 그 자체다. 그것은 되기(devenir)가 된다.
¹가령 아주 느리게 가는(이것도 강렬도의 한 양상인데) 자동차는, 적어도 그로 인해 답답해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느림보 거북이'라고까지 느끼게 만든다. 즉 그러한 속도의 분포는 그 자동차를 거북이가 되게 한다. 자동차의 거북이-되기. 반면 속도를 빨리하던 자동차가 하나의 문턱을 넘어 미친 듯이 달리게 될 때, 그것은 광인 내지 살인-기계가 된다. 음주 운전으로 갈지자를 그리는 자동차는 술취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한다. 앞서 사용한 '이미지로서 사물'이란 말은 이런 뜻으로 보인다. 이처럼 하나의 사물이 다른 이미지를 갖는 것, 아니 다른 사물로 되는 것은 속도 등의 강렬도의 변화에 따른 것이고, 그와 결부된 말의 사용과 결부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예에서 자동차가 그렇듯이 사물들은 가변적인 강렬도들의 연속체일 뿐이고, 특정한 강렬도에 따라 '무엇'으로 불린다. ─ 역주
_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지음, 이진경 옮김, 『카프카 - 소수적인 문학을 위하여』, 동문선
인간 종 가운데에는 주체들로 인정받지 못하고 동물 취급을 받고 있는 많은 '주체들'이 존재해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우리가 혼동스럽게도 동물이라고 부르는, 따라서 생명을 지니고 있을 뿐 그 이상은 아닌 생명체는 법이나 법의 주체가 아니다. 정당한 것과 부당한 것의 대립은 동물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다.
정치화─비록 결코 총체적일 수 없으며, 총체적이어서도 안 되지만─는 끝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뻔한 소리나 진부한 말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결과들을 인지해야 한다. 곧 정치화에서 각각의 진전은 이전에 계산되거나 한정되었던 정치의 토대 자체를 재고찰하고, 따라서 재해석하도록 강제한다. 이는 예컨대 인권 선언, 노예제 폐지에 대해 진실이었으며, 모든 해방 투쟁, 곧 세계 도처에서 남성들과 여성들을 위해 진행 중에 있고 계속 진행되어야 할 해방 투쟁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법을 위협하는 것은 이미 법에, 법의 법에, 법의 기원에 속해 있다. 그리하여 총파업은 귀중한 실마리를 제공해주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현존하는 법질서에 저항하고, 이를 통해 (…) 적어도 새로운 법을 정초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혁명적 상황을 창출하도록 승인받은 권리를 실행하기 때문이다. 좌익적이든 우익적이든 간에 모든 혁명적 상황과 모든 혁명적 담론은 진행 중이거나 도래할 예정인 새로운 법, 새로운 국가의 창설을 주장함으로써 폭력에 의존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도래할 법이 정의감과 충돌할 수도 있는 폭력을 소급적으로, 회고적으로 정당화하게 될 것처럼, 그것의 전미래는 이미 폭력을 정당화한다. 모든 국가의 정초는 우리가 이처럼 혁명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새로운 법을 창설하며, 항상 폭력 속에서 창설한다.
_자크 데리다 지음, 진태원 옮김, 『법의 힘』,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