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서점일기
1. 벌써 오후 세 시, 무엇?? 아니 뭘 했다고?! 그러고 보니 '사각공간思覺空間'으로 자리한지도 봄이면 만 3년. 정말이지 삼추三秋 여일각如一刻 같은 세월이로고;; '눈 뜨고 코 베인' 기분이다. 하여 새삼 다짐하여 보느니, 매 일각의 프레임마다 집을 짓는 마음으로 공을 들이자는 것. 하지만 이렇게 애를 쓰겠다 덤벼도 작심 3분, 또 얼마간 아니 상당 부분 멍- 잡아 空으로 메우고 말겠지만;; 그래도 '공즉시색空卽是色' 괜한 말은 아니어서 간간間間이 사思가 끼어들어 각覺으로 맺기도 하니 이러면 되지 싶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아, 문득 느껴지는 코스모-
2. 개체個體로서 '인간'을 체험 중인 하나의 영성靈性. 해서 '일체一切 ≒ 법신法身 일체一體'. 여러 색신色身 빌어 입고, 나서 죽기까지. 하면 죽음은 법신으로의 회귀. 그렇다면 '달란트 talent'는 사는 동안 저마다의 처지를 딛고 각을 세워 변증을 연속하는 것이야말로 책무라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이 모두, 넓게 보면 대승大乘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일. 이로써 이루느니 비로소 흐름, 사람의 역사 아닐지. '오래된 미래'로 이미 자리하여 있던 진리는, 이 흐름 가운데 재림 거듭하는 것이고. 하면 계속해서 이를 작동시키는 게 인간種의 숙명이라 여길 수도 있겠다. 때문에 이를 지속 가능케 하는 장場으로써의 여지餘地, 발견이 부각. 소위 전위[前衛, Avant-Garde]는 이 여지를 쫓는 모험 감행에 앞장서는 첨병이겠고. 이러니 항시 오프-사이드를 범할 밖에, 외려 적극 범해야만 함이 사명이겠다. 예술을 비롯한 각 분야分野, 그래 곧 나뉜[分] 들판[野]을 가로/세로 질러 나아가 '코끼리'인지 뭔지 무어라 이르든 간에 진리상을 저마다 감각 후 다시 짜기워[이러한 조립 과정에서 탄생하는 일종이 '메타포' 같은 것] 보다 많은 이들이 그 상을 함께 가늠하게끔 제시하는 것. 이런 사상思想의 출산이야말로 당장 장려 이상 촉구되어야 마땅할 것.
그런데 이 작업에는 젬병이거나 심지어 무얼 하는지에 대한 인식조차 부재이면서 깃발 꽂고 숟가락 얹어 제 이름 아래 두고 추수하려는 데에만 혈안인 축. 도처에 선지자先知者 행세, 그를 자처하는 이들끼리 무리를 이루어 서로 간 이단異端으로 배척 연속이라니~~;; 그런데 당초 단檀을 제작, 올라서선 제 눈 아래 두고 살피려는 욕망에 충실한 작자들 죄다 이단 아닌가. 생명에 이르는 길을 막아 세우는 거짓 선지자로 버금이라면 서러워할 으뜸들 아닌지. 그러니 어깨 위에 얹힌 게 머리 맞다면 기웃대며 베낄 시간을 아껴 좀 굴려보시라. 인간種의 한 개체로 나름의 (달란트=) 책무를 다 하십시다. 젭알요 ~ '0'/ (이런 때라야 자아상에 겨우 오버랩되느니 '시지프스'. 그렇잖소?!). 무임승차 거듭해봐야 두꺼워지는 건 낯짝과 뱃살뿐. 여지 발견 위한 촉을 벼리는 애티튜드라면 져스트, 헝그리-정신[Stay-Hungry]. 심지어 나태로 지속해도 그만인 환경과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 모두를 뒤로 하고 바보-되기[Stay-Foolish]를 주저하지 않기(헤세는 『싯다르타』 초입에서, 이 '천로역정'의 '좁은 길'로 나서는 이의 모습을 굉장히 잘 담아주었다).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하지만 '모든 말이 어느 주둥이에나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아, 뭐 어쩌라고요~~;; 어쩌긴 킵-고잉이지. 가즈아 ~ '0'/

* p330,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청하